˝오키스트러의 권력투쟁˝|「카라얀」과 베를린·필 단원 불화 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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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74)을 1955년 상임지휘자로 맞이하여 28년간 정상의 위치를 누려온 베를린 필하모닉 오키스트러가 최근 「카라얀」과 단원들 사이에 반목이 격화돼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 자리가 비어 있는 클라리네트 연주자의 채용문제를 싸고「카라얀」과 단원간에 빚어졌던 단순한『음악성 해석에 대한 의견차이』가 감정대립으로 확대되어 이제는 오키스트러의 「권력투쟁」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지) 으로까지 발전해 버렸다. 「카라얀」 은 자기주장을 관철하지 못할 경우 베를린 필을 떠나 비엔나 필로 옮길지도 모른다는 풍문도 있어 서독 음악계는 물론 보도 매체들도 베를린필의 동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카라얀」과 악 단원들간의 반목이 여론에 노출된 것은 지난해 12월초 그가「오키스트러와 계약된 규정에 따라 연간 6회의 정기연주회를 제외하고는 일절 베를린필을 지휘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이 알려진 뒤부터였다.
지난 28년간 「카라얀」의 지휘로 조화를 자랑하던 연주음악과 마찬가지로 연주자와 지휘자의 인간적 조화를 이루어왔던 베를린 필을 이처럼 분열시키게 된 불씨는 1년전부터 비어있는 클라리네트 연주자의 자리에 「카라얀」 이「사비네· 마이어」(23)라는 여성을 맞이하려는데 대해 악 단원들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키스트러의 운영규정에 따르면 새로운 단원을 맞을 때는 시험연주를 들은 다음 비밀투표로 1년간의 「예비입단」여부를 결정하도록 돼있어 이와 같은 사태가 빚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상임지휘자는 단원들의 결정에 대한(입단시키기로 결정했을 경우)거부권을 갖고 있다. 「카라얀」이 「매혹된」「마이어」는 처음 테스트를 받았을 때 응모자들 중 가장 훌륭하다는 평을 받기는 했으나 악 단원들은 악단과의 앙상블에 불안을 느껴 근소한 표차로 예비입단을 거절했다.
당시에는 1882년 베를린필의 창립 이래 1백년간 지켜온 금녀의 전통을 깰 수없다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 이후에도 「마이어」는 임시연주자로 베를린 필의 연주에 계속 참가, 해외연주에도 나가 호평을 받는 등 음악적 재질을 높이 평가받았으나 지난해 11월 단원들의 두 번째 투표에서도 근소한 표차로 다시 입단이 좌절됐다.
이렇게 되자 단원들의 태도에「카라얀」은 불만을 터뜨려 계약에 규정된 연주 외에는 일절 나서지 앉겠다는 서한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국내외 순회연주, 방송출연은 물론 음반회사의 녹음 연주에도 자신은 나서지 않겠다는 것을 뜻하므로 악 단원들에게는 재정적으로 큰 손실을 뜻한다. 정기연주회 이외의 공연을 통해 들어오던 막대한 수입이 줄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라얀」 은 지난 연말 계획됐던 TV연주의 지휘계획을 취소, 악단은 10만마르크(3천만원)의 수입을 놓쳤다.
이런 손해를 입으면서도 악 단원들은 「카라얀」의 서한을 받은 뒤인 이달 초순에 세 번째로 「마이어」의 입단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으나 먼저 번의 두 차례 표차가 근소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반대73, 찬성4, 기권7표로 「카라얀」의 횡포에 노골적이고도 감정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서 베를린시 당국이 중재에 나서고 있으나 이제는 단순한 「단원채용」 문제에 대한 의견차이의 차원을 넘어 여러 면에서 반목이 드러나 「원만한 수습」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서독의 음악계와 여론은 베를린 필이 그 음악성뿐 아니라, 분단된 독일의 특수한 정치상황을 대표하고 있는 베를린의 「안정과 조화」를 상징해 왔다는데서 사태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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