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촬영은 구실일 뿐 잔혹한 변태행위˝|「촬영살인」을 보는 각계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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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죽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인을 독살한 아마추어 사진작가 이동식씨(42)의「희귀한 살인」사건은 일반시민은 물론 작품창조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예술가들은 예술은 인간의 존엄성과 순수성을 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떠한 명분으로도 인간을 회생시켜가며 창작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못 박고 최근 예술을 그릇 이해한 일부 아마추어 작가들의 예술을 빙자한 갖가지 활동에 경종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씨의 행동은 불우한 성장과정과 남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쾌감을 찾는「새디스트」(가학성변태성욕자)나 성도착증세 혹은 TV등을 보고 환상에 젖은 나머지 환상을 현실화 하려는 데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지적, TV물의 엄선과 전인교육의 필요성등율 강조하기도 했다.
◇홍순태교수(50·신구전문대· 사진학과과장)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피사체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예술은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순수성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사진작가는 난장이·거지·아편중독자 등 극한상황의 인간을 피사체로 잡아 인간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창조해냈다.
이 사진작가는 결국 자신마저 극한상황에 이르게 함으로써 47살의 나이에 자살로 일생을 끝맺음 했다.
이 경우 죽음을 통해 자신의 창작활동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진이「순간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공포와 전율의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피사체로 하여금 실제로 죽음을 연출하게 할 수는 없다.
인간생명의 존엄성은 예술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명동씨(사진평론가)1백40여년의 세계 사진역사를 통해서 사람의 죽어가는 표정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서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은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 모습을 찍고 싶어서 애인을 독살하면서 무려 20여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전인공노 할 사건이 바로 우리나라 사회에서 있었으니 참으로 슬프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추구하려고 하고 또 시도하는 사진예술의 경향은 다양해서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의 동기로 지적된 범인이 시도하고 찍은 사진을 예술이나 사진 미학적 차원에서 운운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역사적으로 사람이 죽는 순간을 찍은 사진으로는 「로버트·캬파」가 스페인내전 때 찍은 『어떤 병사의 죽음』 으로 이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걸작사진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리적인 셔터찬스와 인간의 죽음과 거기에 담긴 작가의 자세는 병사의 막 쓰러지려는 사진구도에 있어서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범인이 찍은 여인의 죽는 모습과「캬파」가 찍은 병사의 죽어가는 순간의 모습을 동질의 가치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식하고 무모한 결정적 순간의 시도를 통탄하고 저주할 뿐이다.
오늘날 예총·한국사진작가협회에는 전국을 통해 무려 1천5백 명 가까운 회원이 있다. 이들 회원의 80% 정도는 다만 사진을 취미도락으로 즐기는 아마추어들이며 사진을 순수작업으로 삼고 있는 프로패셔널은 불과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협의 회원자격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용단이 있어야 하겠다.
◇장병림교수(서울대 심리학)
성욕도착증과 「사진」이라는 자기취미에 몰입, 자신의 파멸을 가져온 이상성격의 소유자로 본다.
이씨의 경우 다른 사람이 사진에 담지 못한 「사람이 죽어가는 생생한 모습」을 자기만이 사진에 찍음으로써 극치의 쾌감을 맛보려했던 것 같다.
이전에 일본 경도제국대학의 한 역사학 교수가 교내 박물관의 그림 한 폭을 훔쳐 다른 사람이 지니지 못한 그림을 자신의 품에 안음으로써 극치의 만족을 얻으려 한 사례가 있다.
욕망이 지나치면 일반적인 사회적인 규범을 넘게 되고 정상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듯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자라온 이씨가 이 같은 이상성격자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여기에 바로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평생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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