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장 불신하고 경쟁력 오른 나라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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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 경쟁력이 자꾸 뒷걸음질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정부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2002년 세계 50위에서 지난해 60위로 10계단 추락했다. 항목별로는 국민의 정치 참여만 소폭 상승했을 뿐 정치적 안정성이나 정부 역량, 정책의 질적 수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 부패에 대한 통제 등 나머지 5개 항목은 모두 하락했다. 정부 경쟁력이 김대중 정권 때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그동안 국민이 속으로 짐작해 온 정부의 한심한 경쟁력 수준이 구체적 수치로 나타난 셈이다.

물론 해외 기관이 발표하는 경쟁력 순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오면 정부는 정확하지도 치밀하지도 않은 조사라고 반박하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나 국제경영연구원(IMD)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추락까지 감안하면 '한국호(號)'에 이상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특히 몇 년 사이에 정부의 행정력과 정치 분야의 경쟁력 추락을 지적하는 조사 결과가 반복되고 있는 현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 성장 초기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경제개발을 이끌어 왔다. 지금 정부에는 그런 것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말로만 경제를 외칠 뿐 과거사다, 연정이다, 분배다, 온통 이념과 과거에 매달리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는커녕 걸림돌이 돼 버린 형국이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경쟁 촉진을 통해 민간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부는 평등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고 공정한 심판 역할만 하면 된다. 이념과 명분에 집착해 반시장적인 정책을 쏟아내선 안 된다. 정부 경쟁력 제고의 첫 단추는 비대화된 정부의 규모와 권한을 줄이는 일이다. 미국도 1990년대에 '작은 정부'를 도입하고 효율성을 높여 세계 10위권을 맴돌던 경쟁력을 1위로 끌어올렸다. 시장을 불신하는 정부치고 경쟁력이 올라간 나라는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