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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 대입 논술 가이드라인 논란

"변형된 본고사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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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대입 논술고사 4대 가이드라인이 논란이다. 교육부는 학생의 학습 압박감을 줄이고 학부모의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라지만 논술 문제까지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느냐는 비판과 본고사형으로 편법 운영됐던 논술 고사가 제자리를 찾게 됐다는 환영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논술 가이드라인 발표로 논술고사와 본고사의 경계에 뚜렷한 선이 그어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고, 영어 지문의 출제를 금지한 것이 세계화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논술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대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학계와 시민단체, 정부 관계자의 의견을 들어봤다.

▶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논술 기준을 두고 학계와 시민단체, 정부 관계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진 왼쪽부터 윤지희 대표, 박융수 과장, 강치원 교수(사회), 서정화 교수, 김재웅 교수.[오종택 기자]

▶사회=논술 규제를 두고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해외토픽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논술 가이드라인이 왜 필요한가.

▶박융수=교육부총리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인데도 굳이 가이드라인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고충이 많았겠는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는데도 해야 되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정부도 안 하고 싶었다. 기준을 발표할 때 논술고사에 해당하지 않는 예시문항을 보여줬다. 대부분 대학이 2005학년도에 낸 문제다. 그러나 그 문항을 보면 삼척동자도 논술이라곤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원칙적 개념과 불가한 유형 네 가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논술심의위에서 사후적으로 가리도록 했다.

▶윤지희=교육시민단체에선 지난해 논술이 본고사형이었다고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그간 과도하게 변형됐던 대학의 논술을 제 방향으로 맞춘다는 측면에서 적절했다고 본다. 그러나 논술을 당락을 결정하는 전형 요소로 계속 놔둬야 할 것인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서정화=대학 입시는 기본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가이드라인 제시는 국민 여론이나 학생 부담, 요동치는 사교육 시장 등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는 조치다. 하지만 미리 제시해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참고하도록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김재웅=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시점과 적용의 문제다. 올 수시부터 적용한 건 성급했다. 적어도 한 학기, 또는 1년 정도 유예기간을 뒀어야 했다. 논술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도 여전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가장 뚜렷한 게 영어지문 금지 하나일 뿐 그 외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다.


▶사회=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논술이란 무엇인가.

▶윤지희=적어도 특정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논술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간 대학에서 낸 문제는 논술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드는 대학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 것인지, 고통받는 학생과 학부모를 염두에 둔다면 선발권을 행사할 게 그것밖에 없는지 대학에 묻고 싶다.

▶김재웅=흥미로운 건 고등교육법에 논술고사 이외의 필답고사 시행은 안 된다고 돼 있다. 필답고사는 다분히 본고사를 말한 것일 거다. 논술고사에 대해선 합의가 있는 듯하다. 통합교과형 주제에 대해 주어진 시간에 논리적으로 기술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어지문도 좋다고 본다. 너무 어렵다는 비판이 있어 영어지문 출제를 금지한 것 같은데 '너무 친절한 교육부'가 아닌가. 대학이 얼마든지 알아서 해도 무방한 문제까지 정부가 나서서 하라 말라 하는 것은 지나치다. 대학을 너무 어린애 취급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융수=사실 영어문제는 발표 하루 전까지 고심했다. 한 달 동안 100여 명에게 의견을 수렴했다. 주요 대학 총장에게 논술의 개념을 정의해 달라고 했다. 수용할 건 수용했다. 그러나 교육 정상화 측면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영어지문의 경우 영어해독 능력이 없다면 기본적으로 논술을 할 수 없다. 영어능력을 측정하려면 수능과 학생부에 영어과목이 있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특별전형을 통해 권위 있는 영어측정 시험 결과를 반영할 수도 있다. 굳이 논술이란 이름을 빌려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봤다.

▶사회=독일에선 영어시험을 영어로 치른다. 문제도 영어, 답도 영어다. 이렇듯 논술은 하나의 방식이고 모든 교과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어떤가. 국어적인 것인가.

▶박융수=그렇다. 자국어를 의미한다.

▶김재웅=모순이 있다. 수능에 영어(외국어영역)가 있어서 영어지문이 필요 없다는 논리라면 언어 영역도 있다. 그럼 그것으로 다하라고 해야할 것이 아닌가. 대학에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을 뽑겠다고 하는 게 잘못인가. 수능이 측정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국가 장래를 위해 귀중한 능력을 논술이나 구술 면접을 통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논술에 조건을 달아 한정된 몇 개만 하라는 건 대학을 지나치게 무시한 처사다.

▶윤지희=보다 장기적으로 논술고사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능이 자격고사가 되고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과 그 결과를 토대로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생들은 책상 앞에 16시간, 18시간 앉아서 대부분 끊임없이 줄 치고 공부하고 문제를 푼다. 그 시간에 봉사활동을 하고 체육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공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대학 선발제가 바뀌어야 한다.

▶김재웅=미국과 비슷한 모델을 생각하는 듯한데 그것도 하나의 유형일 순 있다. 그러기 위해선 고교에서 학생을 그렇게 길러낼 수 있어야 하고, 미국교사들처럼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해야 하는데 우리 문화에 맞을 것 같지 않다.

▶서정화=국민적 교육열을 감안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학생평가를 제대로 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입시를 두 번 책임지면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고 싶어도 겁나서 못했다. 자칫 큰일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다.

▶박융수=2008학년도 대입 개선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학생부 기록을 엄격하고 신뢰도 높게 만들어 대학이 쓸 수 있게 하고, 수능을 등급제로 해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학생부는 대학 입장에서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변별력 있는 유의미한 자료가 될 것이다. 올 1학기 성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정규 분포에 가까운 형태가 나왔다. 아이들의 순위가 일정하게 결정되는 상황이니 학생부를 못 믿겠다는 우려는 안 해도 될 듯하다. 수능도 모집단위나 선발정책에 따라 변별력을 갖는다. 영역별 1등급이 2만4000명이라지만 전체 영역에서 1등급을 받은 수험생은 1000명이 채 안 된다. 비교과 영역의 평가도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김재웅=그렇게 되면 대학은 아쉬울 게 없을 것이다. 걱정스러운 건 상대평가를 엄격히 할 때의 폐해다. 1980년대 초 15등급으로 했을 때 고교 교실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학교 안에서 상대평가를 하면 교실이 지옥이 된다. 교육학자로서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상대평가를 엄격히 하려면 결국 객관식 평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설득력이 있고 승복을 얻어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주관식.논술식 평가는 더욱 어려워진다. 또 교사들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

▶박융수=반이 아닌 학교 전체에서 경쟁한다. 2008학년도 이전에도 상대평가는 있었다. 평어 방식의 절대 평가도 있었지만. 올 고1의 경우 경쟁이 심화됐다는 불만이 많은 건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이란 게 없던 아이들이어서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나 2008년 안은 교육적으론 개선된 것이다. 거시적으로 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경쟁은 나쁜 거니까 학창시절에 하지 말고 사회에 가서 하라고 하는 게 교육적인가, 아니면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우정을 꽃피우고, 잘하는 아이는 못 하는 아이를 가르치고 못하는 아이는 도움을 받으면서 교우 관계를 형성하도록 지도하는 게 바람직한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사회=평준화라지만 엄연히 고교 간 수준 차가 있다. 학생부에선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등가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박융수=만일 학생부로만 뽑게 한다면 학교 간 수준 차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또 학교의 수준에 따른 개인의 잠재성은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학생부의 한계를 수능과 대학별 고사가 극복한다고 본다. 이들 전형요소 간 삼각구도가 묘하게 형성돼 있다. 대학은 세 가지 전형요소를 특성 있게 활용, 결과적으로 보면 학교 차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소하고 있다고 본다. 평준화와 관련해 그간의 논의는 아이들의 능력별로 무리지어 주자는 게 주류였다. 그러나 미국에선 양분돼 있다. 비슷한 수준끼리 묶는 게 인지.지식적 측면에서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사회성을 비롯한 여타 능력에선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교실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생 선발권이 결국 대학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정화=기본적으로 대학이 자율화되고 사회적 책임이 전제된다면 대학 입시는 대학에 맡기는 게 타당하다. 교육부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학이 더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10년 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식으로 단계적 실시를 위한 로드맵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윤지희=대학의 선발권은 결국 고교 정상화에 목표가 맞춰지는 게 옳다고 본다. 중고 교육을 파행시키면서까지 학생을 선발하는 것에 대해선 용납하기 어렵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고교 졸업생 수가 대학 입학생 수보다 줄어드는 상황에서 본고사를 주장하는 대학은 10여 개에 불과하다. 10여 개 대학의 욕심 때문에 공교육이 파행돼선 곤란하다. 앞으로 대학은 고교가 인재 양성을 하지 못해서 자체 시험을 통해 뽑겠다고 하기보다는 고교 교육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슨 교육이 필요한지 요구와 질책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김재웅=대학의 학생 선발 과정은 사회적 선발과 교육적 기능이 만나는 장면이다. 그래서 정부도 관심을 갖는 것이다. 대학.정부.고교 3자가 고유한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풀어가면 모두가 행복한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역할당이나 소외계층 배려 등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줄 책임이 있다. 고교는 커리큘럼 내에서 정직하고 믿을 만한 자료를 제공하고 대학은 설립 목적과 이념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발한다면 3자가 윈-윈(win-win)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공부란 게 재밌고 의미 있다는 체험을 학교에서 했으면 좋겠다. 배우면서 열정.희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체험, 그게 살아 움직여줘야 하는데 교육 자체가 없어지고 선발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아쉽다.

▶박융수=교육부는 대학에서 자기 책임과 권한을 갖고 외부적 요소까지 감안해 교육적 문제에 대해 자율권을 행사해 주길 바란다. 교육부도 다양한 의견을 들어 조금 더 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하도록 노력하겠다. 흔히들 정부가 너무 세세하게 규제한다고 하는데 실은 두 가지다. 3불 정책 중 기여입학제는 불법이니까 규제가 아니고 고교등급제는 평준화 정책 아래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마지막으로 남은 게 본고사 금지다. 이것 외엔 학생 선발과 관련해 규제하는 게 없다. 논술 기준의 제시도 본고사를 금지한 교육부의 정책 방향과 본고사 금지라는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한 것이다. 나머지는 자율이다. 논술과 관련된 규제도 정부 입장에서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할 수 없이 한 것이다.

▶사회=다시 논술 가이드라인 문제로 돌아가자. 이번 조치가 사교육 시장을 다소나마 위축시킬 것이란 기대도 있다. 어떻게 보는가.

▶윤지희=성적에 따라 잘라가는 식의 대입제도에 변화가 없다면 사교육은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논술의 유형에 따라 사교육 문제가 더 심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공교육에서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사교육 시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재웅=결국 사교육 시장은 있을 것이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노력은 언제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신 중심으로 뽑는다니 내신 과외가 판치는 실정 아닌가.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사교육시장은 재빠르게 대응할 것이고 학부모는 이에 동참할 것이다. 이번 조치가 사교육을 줄일 것이란 걸 믿기 어렵다. 만약 줄더라도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정도일 것이다. 상식이나 교양 수준으로 대학생을 뽑는다는 것은 대학의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논술만으로 뽑을 수 없다면 결국 심층면접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가 그때도 심의하겠다고 자료를 내놓으라고 할 것인가. 대입은 사회적 선발 기능과 교육 기능을 갖는데 사회적 선발 기능에 너무 예민해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교육적 기능이 죽는다.

▶서정화=고교에서 논술 고사에 대한 교육을 하고 또 대학에서도 출제나 채점 등에 관한 노력을 강화할 테니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리라고 본다. 그러나 경쟁이 있는 한 한계는 있을 것이다.

정리=고정애 기자

<참석자>
서정화 홍익대 교육대학원장
김재웅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윤지희 '교육과 시민사회' 공동대표
박융수 교육인적자원부 대학학무과장
사회 :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