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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환자 재활, ‘골든 타임’ 지키면 회복기간 확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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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국내에서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는 환자는 연 18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2만여 명이 후유장애를 겪는다.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제때 받아야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집중재활치료기관의 부족으로 환자는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 시기를 놓친다. 이렇게 소요되는 사회적 손실은 연 28조원. 교통사고 환자의 재활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은 이런 배경에서 설립됐다. 교통사고 환자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 재활의료기관이다. 교통사고 환자에게 최적화된 집중재활치료를 제공한다. 교통사고 재활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전문치료, 국립교통재활병원이 추구하는 의료다.

직장인 박정호(36)씨. 한 달여 전 회식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가 변을 당했다. 신호를 무시한 채 달려오는 차량과 충돌한 것. 박씨는 사고로 허리와 목 등에 손상을 입었다.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후유장애가 남았다.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통증에도 시달렸다. 박씨는 재활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재활병원을 수소문하다 국립교통재활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집중재활치료를 받았고 이제는 상태가 좋아져 가정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박씨가 빠르게 회복한 것은 하루 8시간의 집중재활치료 덕분이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이기에 가능했다. 시범수가제도를 통해 고급 인력·장비가 장시간 투입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환자가 아침에 일어나 저녁식사를 할 때까지 점심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에 재활치료를 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재활병원에서는 길어야 하루 2~3시간의 재활치료가 고작이다.

환자 치료기간 평균 15~20개월

국립교통재활병원이 8시간 집중재활치료를 원칙으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치료효과를 높이고 치료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국내 교통사고 후유장애 환자의 평균 치료기간은 중증환자가 15개월, 최중증환자가 20개월이다. 미국(평균 1~3개월), 유럽(평균 3~6개월)에 비해 턱없이 길다.

 재활치료는 집중치료시간이 길수록 효과적이다. 중증 척수손상 환자나 뇌졸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1~2시간의 치료보다 3시간의 치료가 호전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8시간의 집중재활치료는 이보다 치료효과를 높인다. 외국의 전문재활병원 중에서도 8시간 집중재활치료 시스템을 갖춘 곳을 찾기는 힘들다.

 국립교통재활병원 김태우 전문재활센터장은 “사고 후 환자 상태가 신경학적으로 안정이 이뤄졌다고 판단되면 곧 재활치료를 해야 하는데 이때가 재활치료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하루 8시간 집중재활치료를 통해 손상된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로봇·가상현실, 재활치료 도와

국립교통재활병원은 시설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재활치료 전문가 데이비드 시푸(미국 커먼웰스의대) 교수가 병원을 둘러보고 놀랐을 정도다. 사고 환자의 장애 유형에 따라 4개의 전문센터를 운영한다. 뇌손상재활센터·척수손상재활센터·근골격재활센터·소아재활센터를 두고 있다. 여기에 11개 전문클리닉을 운영해 맞춤형 재활치료가 가능하다. 전문센터와 전문클리닉은 전인치료의 주춧돌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로봇재활치료실과 가상현실치료실이다. 특히 상지재활로봇은 국내에 처음 도입된 첨단 장비다. 환자가 로봇팔을 장착하면 3차원적인 가상현실 속 움직임을 보면서 물건을 집는 등 기능 회복 훈련을 할 수 있다. 스스로 걷기 힘든 환자는 보행재활로봇의 도움을 받는다. 보행재활로봇에 탑승하면 안정적인 상태에서 반복적이고 정확한 보행 패턴을 익힐 수 있다.

 가상현실치료실은 새로운 개념의 최첨단 재활치료 시스템이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에 환자의 모습이 투영돼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환자는 20개의 가상현실에서 물건을 옮기거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등의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인지능력을 향상시킨다.

 맞춤형 재활의 정점은 재가 적응 훈련관이다. 가정과 비슷한 환경에서 미리 독립적인 재활이 가능하도록 훈련한다. 중증장애인도 쉽게 사용 가능한 생활가구와 설비가 마련됐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은 2016년 재가 적응 훈련관을 완성할 계획이다. 국립교통재활병원 김윤태 진료부원장은 “재가 적응 훈련관에서는 환자들이 퇴원 후 직면하는 주거환경에 대해 훈련하고 환자에게 맞는 환경에 대한 상담을 한다”며 “교통사고 후유장애인들이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재활치료를 받아 장애를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글=류장훈 기자 , 사진=신동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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