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화로와 전화받침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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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방학이 끝나면 폐품 모으기로 학교에 선 보이던 청동화로를 전화 받침대로 써온지 꼭 1년이 되나보다.
현대문명에 밀려 벽장 구석에서 시퍼렇게 녹이 슨채 볼품없고 쓸모없게 된 무용지물을 현대생활의 필수품인 전화와 대조적인 인연을 맺어주어 잘 어울리는 품위있는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이다.
볼품 사나운 녹을 닦고 광을 내는동안 일없는 여편네 낮잠이나 자라는 이웃 여자들의 핀잔과, 엄마는 구접스런 일만 한다는 애들의 군소리도 아랑곳없이 닦는대로 윤이 나는 매력은 나를 어려운 줄도 모르게했다.
시장에 가서 화로 공간의 크기만한 둥근 나무쟁반을 사서 꼭 끼우고 그 위에 하얀 전화받침을 받쳐 전화기를 놓았다.
순박했던 옛날에는 이 화로에 장작불을 이글이글 담아 방안의 훈기를 돋우고, 뚝배기의 장을 보글보글 끓이고, 잿속에서 룩룩 튀며 익는 구수한 밤을 손자들에게 먹이며 옛날 이야기를 정답게 들려주던 할머니들의 장신구였던 것을 오늘의 전화받침대로 바꾸어 살린것이 이렇게 현대감각에 잘 어울릴 줄은 미처 몰랐다.
요즘같이 모양이 예쁘고 다양한 전기제품들을 사용하기가 편해서 좋아는 하지만 이 투박한 청동화로보다 더 사랑스럽지가 못하다.
새로운 문명에 멸시당해 지금쯤 어느 구석에서 먼지에 쌓여 아깝게 썩고 있을 옛 것들을 찾아 뒤적이고 손질하여 그 생명의 진가가 오늘에 다시 살수 있도록 하는 맛은 경험이 없이는 사랑스런 그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화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커가는 애들이나 인두를 화로에 묻어놓고 손으로 바느질하던 옛 여인들의 이야기가 동화 속의 일들처럼 들리는 이 청동화로를 옛날의 화로처럼 매일 윤이 나도록 닦아가는 나의 손길은 예와 지금을 이어본다는 보람으로 더옥 즐거워진다.

<충남 예산군 위산읍 주교리 3구117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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