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대응은 위기관리 실패 종합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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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위기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가 오너 관련, 둘째는 범법 관련, 마지막이 내부 고발이다. '땅콩 회항'은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결합돼 있어 발화력이 컸던 반면 대응은 어려웠다.”

위기관리 전문가 정용민(44·사진)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대한항공의 대응은 위기관리 실패 종합세트”라며 “위기 발생 주체와 위기관리 의사결정자를 초기에 분리하지 못하면서 여론이 악화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한항공 대응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

“기업의 A급 위기로는 대개 '언론이 해당 이슈를 집중적으로 3일 이상 다룰 경우'를 꼽는다. 이런 이슈는 국내에서 연간 10개 안팎으로 발생한다. 위기를 발생시킨 주체와 위기관리를 위한 최고의사결정자를 분리하지 않으면 초기 대응이 늦어진다. 집안 일이면서 회사 일이 된 사안에 의사결정자가 어떤 조치를 할지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측이 논란이 발생한 날 저녁 늦게 공식 보도자료를 냈는데 책임을 사무장에게 미루는 내용이었다. 조 전(前)부사장의 책임 범위와 직위를 내놓는 수준도 지적을 받았다. 모두 실무자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쉽게 말해 임원들이 조 전 부사장에게 '나가세요' 할 수는 없다. 내부 입단속, 사무장과 승무원 회유 시도 같은 일도 일부 임원들의 충성심에서 나온 일일 수 있지만 최고의사결정자의 암묵적인 기조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대한항공이 어떻게 했어야 했나.

“조 전부회장은 논란이 불거진 8일 바로 언론에 나와서 신속하게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했어야 한다. 그룹 차원에서는 초기에 국민이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엄하게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장기전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기주체인 자신과 의사결정을 분리한다는 의미란 이런 것이다. 물론 그보다 앞서 피해 당사자들인 사무장·승무원과 화해를 하고 합의를 했어야 했다. 피해자에 대한 관리 없이 전체적인 위기관리는 불가능하다. 현재 장기전을 지루하게 가져가는 것도 핵심 이해관계자 관리를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이다. 최고의사결정자가 나서 논란 요소를 선제로 해소하는 게 위기 관리 핵심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사과광고를 내지 않았나.

“조간 신문들에 게재된 사과광고에서도 위기관리 리더십 부재가 드러난다. 사과문구에 위기 발생 주체인 조 부사장이나 대한항공 최고의사결정자는 언급하지 않고 '대한항공'이라는 법인명을 사용했다. 이번 위기는 법인이 일으킨 게 아니다. 법인명 뒤에 의사결정자들이 숨어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진정성만 더 의심받았다. 조양호 회장이 '사내에 No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라'고 지시했는데, 사과광고를 보면 'No'하는 내부 인력이 없다는 게 드러난다.”

-항공기에서 일어난 사건에 여론은 특히 냉정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수송객 수가 다른 교통수단보다 훨씬 많다. 안전이 중요한 산업이다. 지상보다 위험도가 높은 공중을 운행하기 때문에 기내에서 생기는 문제는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땅콩 회항 문제는 안전이슈가 아니다. 오너의 일탈 행위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문제인 '갑을 관계' 같은 잠재된 이슈를 건드린 문제로 봐야 한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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