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천 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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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이 내놓은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은「장미 빛 미래」를 구가하고 있다. 서기 2001년의 1인당 GNP가 경상가격으로 1만4천9백81달러에 이른다. 한마디로 1만5천 달러.
이것은 80년 미국의 1인당 GNP 1만l천8백 달러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적어도 20년 후의 한국은 바로 오늘날의 미국이 되는 셈이다. 딴 것은 몰라도 GNP(국민총생산)면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참 기분 좋은 소식이다. 20년 후의 미국이 우리보다 얼마나 앞서 나갈지는 잠깐 접어두자.「통계」로는 오늘날의 미국 실력을 20년 후의 우리가 갖추게 된다. 그것도 국토가 여전히 반 동강이가 난 상태에서라니 더욱 대견할 수밖에.
그러나 이 같은 낙관적인 예측에는 간과할 수 없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물가 오름세를 감안하지 않았고 환율이 거의 안정인 것으로 가정한 것. 거기다 연6·8%의 평균성장을 전제로 했다.
우선 서기 2001년의 달러 당 환율이 8백2원 선이 된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을까. 과거 10년간 우리는 환율이 1백%나 오른 경험이 있고 현재도 벌써 7백50원 선이니까.
결국 물가상승을 고려한 2001년의 우리의 GNP는 7천5백73억 달러, 80년의 영·불·캐나다 수준에 접근한다. 1인상 GNP는 더욱 낮아져(인구가 늘기 때문에) 4선3백81달러가 된다. 지금의 싱가포르 수준.
한가지 덧붙이면 수출은 80년 가격으로 1천억 달러, 지금의 영국 수준이 된다. 이쯤 돼도 흐뭇하긴 하다.
사실 이 같은 장기 전망이 마냥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수출을 보자. 80년의 일본 수출고는 1천3백억 달러, 미국은 2천2백억 달러였다. 결국 20년 후면 한국의 수출액은 오늘날의 일본수준에 육박하고 미국의 절반쯤 된다.
우리 수출이 2백억 달러를 돌파한 81년에 전세계의 수출액은 2조 억 달러에 접근했다. 우리가 전세계 수출의 1%가량을 수출한 셈이다. 그러나 이 비율은 199l년에 가면 벌써 1·8%로 증가한다는 전망도 있다. 전세계 수출이 80년 가격으로 2조7천억 달러가 될 때 우리의 수출고가 5백24억 달러가 된다는 것.
이때쯤이면 우리도 10대 교역 국의 하나로 등장할 만하다. 글쎄 어려울까.
하여간 수출증대가 고도성장에 기여한 공로는 계속 연구할 대상이다. 앞으로도 그렇다.
80년대에도 역시 우리 경제의 과제는 인플레퇴치, 소득분배 개선과 함께 고도성장은 빼놓을 수 없는 것.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의 추세를 대입해서 추출한「정보로서의 미래」보다는「내일을 대비하는 오늘의 행동」일 것이다. 장미 빛 미래는 결코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찾아 오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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