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예산 1조2천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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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도 서울의 83년도 예산이 확정 발표된 것을 보고 우선 놀라게 되는 것은 그 거대한 규모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쳐 예산의 규모는 자그마치 1조2천8백53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단히 얘기해서 우리 국가예산 10조4천억원의 12%를 상회한다.
서울시의 살림살이 규모가 나라살림 규모의 1할을 넘는 크기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일면 놀랍기도 하지만 또 일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서울은 우리의 수도이며 그 인구는 세계의 10대도시에 들만큼 팽창돼 있어 전국민의 거의 4분의1을 차지하기에 이르고 있고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활동의 중심인 점에서다.
하지만 그런 서울시 예산 확정 발표에 따라 우리는 몇 가지 문제를 환기하고 싶다.
하나는 서울시 당국이 신규사업은 최대로 억제했다고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시민의 1인당 세금은 올해보다 15.6%가 늘어난 5만6천3백14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가를 억제하고 또 임금상승을 강력하게 억제해온 국가경제 시책에 비추어 15·6%의 세금 증가는 시민의 부담을 그만큼 무겁게 한다.
둘째는 그렇게 큰 규모의 예산이 효율적 심의, 분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지 국무회의 의결로써 집행되고 있다는 현실의 여건을 정부나 시 당국이 잘 인식해야겠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아직 미비한 현실에서 예산의 책정과 집행과정을 충분히 감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런 만큼 예산을 집행하는 서울시 당국은 시민의 부담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온갖 성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세 째는 서울시가 예산편성에서 시민 기본생활 향상에 비중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 실제는 별로 만족스러운 것이 없어 보인다.
시민생활 안정과 서민보호사업으로 뒷골목 정비와 하수도 정비에 1백95억원, 영세민 보호에 1백45억원, 복지시설 투자는 97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시가 지금 해야할 일이 산적해 있고 써야할 비용도 막대한 입장이란 것은 모르는바 아니다.
지하철 공사 등 계속사업의 추진이나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사업추진, 그리고 한강개발이다, 공원조성이다 해서 벌여놓은 사업을 마감해야할 어려운 입장인 것은 주지하는 바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개최에 부수된 각종 사업에만. 지나치게 예산이 집중, 투자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은 못된다.
수도서울의 체통을 살리고 나라의 경제적 위신을 세우는데 골똘하다 보면 시민들의 외화내빈하는 의식만 고취할 뿐 시민의 문화의식의 향상이라든가 도시의 균형적 발전이란 측면을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다.
소외되고 있는 도시의 변두리나 빈민촌의 환경여건 향상, 생활조건 향상의 노력 없이는 눈에 띄는 서울의 호사는 무의미한 낭비일수도 있다.
서울의 도시로서의 아름다움은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의 뛰어남과 더불어 한국적 인정과 생활감이 넘치는 거리와 골목이 있음으로 해서다.
어느 면에서 서울시의 행정은 그 시민의 삶의 태도와 활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감싸주고 키워주는 일로 집약된다.
나라의 경제발전과 도시민의 생활이 향상되고 도시환경이 보다 개선되는 것은 당연한 추세이다. 삶의 질의 향상은 당연한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시는 예산을 많이 써서 삶의 질이 향상될 수는 있지만 인정과 활력을 유지하는 삶의 공간으로 계속 남는 것은 아니다.
밤의 정적이 감싸는 유럽의 도시들에선 과거엔 볼 수 있었던「생활」이 사라지고 있다는 개탄도 나오고 있음을 알아야겠다.
뿐더러 이 시점은 서울시로선 장기적 연차 계획에 따라 도시를 정비해야 할 마지막 기회임도 강조하고 싶다.
지하철 공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20만대의 자동차로 서울의 거리는 지금도 거의 마비상태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늘어날 차량에 대비한 도로 정비나 상·하수도 정비계획은 이 기회에 완비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좀처럼 기회가 없다. 도시의 기본을 형성하는 사업, 사회간접자본으로 축적될 사업은 지금 이루어 놓아야 한다.
서울시의 내년도 예산의 확정을 보면서 새삼 시 당국이 예산집행에 보다 효율을 기해야할 것이며 아울러 눈앞의 일에만 집착하지 말고 먼 장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과 그런 사명감에 소홀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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