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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현대인의 병(309) - 이시형 <고려병원 정신신경 과장> 신경성요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중년에 들어 허리 안앓아 본사람이 별로 없을게다. 디스크란 진단은 이제 일반인에게도 생소한게 아니다. 그러나 막연히 디스크증상이라지만 그 원인은 여러가지다. 요추끌절등 뻐의 이상이나 신경의 압박요인, 근육긴장등 여러가지 기질적원인이 있으므로 정밀한 검사가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검사상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환자는 상당히 심한 요통을 호소하며 병원출입이 잦은 경우가 있다. 이렇게 뚜렷한 이유없이 만성적 요통이 있을때는 일단 정신적 원인은 없는가를 캐볼 필요가 있다.
김사장은 장기간의 해외출장에 시달려 귀국할적엔 거의 그로기상태였다. 피로가 다소 회복되어 정상근무를 시작할 무렵부터 은근히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찜질도 하고 마사지도 해보았으나 호전되지않아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다 받아봤지만 정상이었다.
물리치료도 받아보고 침도 맞아보았지만 역시 큰 효험이 없었다. 즐겨하던 운동도 집어치우고 열심히 허리치료를 받으러 다녔으나 효과는 커녕 이젠 차타기조차 거북하게끔 되었다.
그가 신경정신과에 떠밀리다시피 찾아왔을때만해도 「내가 왜 여길 오느냐」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와의 몇차례 면담에서 그는 부부생활에 대해 상당한 불안과 자신을 잃고있다는게 밝혀졌다. 해외출장에서 돌아온날 저녁 오랜만에 회포를 풀려고했으나 뜻대로 되지않았다. 피로해서 그럴거라고 부인이 위로했지만 그로선 자존심이 보통 상한게 아니었다.
그후부터 그는 밤만되면 겁부터 났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사실 그는 성공포증환자였다. 그날이후 한번도 부인곁엘 가지않았다.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였다. 밤늦게까지 사우나탕에 가고 찜질하는것도 밤을 회피하기위한 그나름의 구실이었다.
물론 그가 의식적으로 그러는건 아니다. 안아픈 허리를 꾀병하는것도 물론 아니다. 그는 진짜 허리가 아픈것이다. 거기에 신경을 쓰다보니 성에 대한 불안은 생각할 겨를도 없어진다. 그의 잠재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성불구보다는 허리가 아픈 것이 낫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일련의 그의 심리과정을 이해하고 난 다음부터 허리는 하루아침에 거뜬히 나았다. 물론 옛날의 정력도 회복되었다.
까닭없이 아픈 허리는 성적갈등과 관련이 많다. 예부터 허리가 아프다는게 성기피에는 가장 설득력있는 핑계가 되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진짜 디스크 환자에게도 요령있는 성생활을 오히려 권하고있다. 허리가 아프다는 사람은 한번쯤 자기의 성생활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댜. 이외에도 자학적 성격의 사람들이 허리가 아프단 소릴 잘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들의 사회생활은 더 적극적이라는것도 특징이다.
아플수록 사업을 더 열심히, 더 잘하는형이다. 아픈것이야말로 그들의 활동을 의욕적으로 하게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며 이것이 일생을 통해 옛날의 친구처럼 되기도한다. 아픈게 필요한 사람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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