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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게] "유흥업소 막고 나눔상가 열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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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지난달 25일 문을 연 '아름다운 가게' 50호 답십리점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김춘식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5동, 조용하던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다. 풍물패 꽹과리 소리가 요란한가 하면 마술 쇼가 벌어졌고 밴드 연주도 이어졌다. 교장선생님.구청장.구의원.우체국장 등도 얼굴을 보였다. 집안에 있던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상기된 표정으로 시끌벅적한 오후를 즐겼다. '아름다운 가게' 답십리점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보인 자리였다.

우창프라자아파트 지하상가에 문을 연 답십리점은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기증한 최초의 가게다. 여기에는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해 9월 우창아파트의 지하상가에 유흥업소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파트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고 그 결과 유흥업소 부지로 예정돼 있던 30여 평의 가게 건물을 공동으로 사들이게 되었다. 이 가게를 어떻게 사용할까 고심하던 김승원(49) 운영위원장은 아름다운 가게를 열 것을 제안했고 주민들은 '잘 될까'라며 반신반의하면서도 '아름다운 뜻'에 동참하기로 했다.

문제는 장소 제공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2000만원에 달하는 부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김 위원장은 지역 기업과 자치단체를 돌며 기부를 부탁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들을 찾아갔을 때 말을 잘 들어주다가도 막상 기부에는 고개를 저을 때는 힘들어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 가지고 있던 물건을 기부해 연 벼룩시장에서 20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고 인근 옷가게에서 고급 의류 300여 점을 선뜻 기부해 오기도 했다.

이에 자신을 얻은 주민들은 뚝심 있게 가게 건립을 추진했고 일부 기업과 단체의 도움에도 힘입어 결국 결실을 맺게 되었다. 우창아파트는 답십리점 외에 '아름다운 아파트'로도 선정돼 이날 조인식을 했다. 우창아파트에는 기부함이 설치되어 모인 물품은 아름다운 가게로 전달된다.

답십리점 개점으로 지역 주민들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 있다. 이웃 아파트 부녀회장인 조경숙(56) 씨는 "이 동네에 5년을 살았는데 이런 축제 분위기는 없었던 것 같다"며 "여건이 된다면 우리 아파트에서도 아름다운 가게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답십리점 바로 옆에서 귀금속 가게를 경영하는 박용(55) 씨는 "그동안 상가가 많이 침체된 편이었는데 아름다운 가게 개점으로 인해 유동인구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달에도 서너 번씩 아름다운 가게를 찾았다는 심모(44.답십리1동) 씨는 "지금까지는 일부러 먼 곳을 찾아다녔는데 이제 한 걸음에 올 수 있게 됐다"며 즐거워 했다. 답십리점은 이날 600여 명의 고객이 찾아 207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한편 답십리점 개장으로 아름다운 가게는 모두 50개의 매장을 가지게 됐다. 2002년 10월 1호점이 문을 연 지 30개월만이다. 서울.경기 외의 지방에도 13개 도시에 17개 매장이 생겼다. 그간 기업과 개인.종교단체.공공기관.상가 등에서 가게를 기부했고 특히 최근에는 개인이 기부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올 상반기 기증된 매장의 41%를 개인 기부가 차지했다. 아름다운 가게 행사에 연예인이나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끼 기부', '지식 기부'가 늘고 있는 현상도 기부문화의 다양성 증대에 아름다운 가게가 기여한 점으로 평가된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아름다운 가게 6차 수익나눔

판교 철거지역 공부방 '희망동네' 아름다운 가게 2005년 하반기 수익금 배분에서 150만원을 지원받았다.'마포연대'에도 150만원이 지원돼 이 단체에서 밑반찬을 도움받는 독거노인과 저소득층 가정이 더 맛깔스러운 밥상을 차릴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살길이 막막한 이준성(9.가명)군에게는 100만원, 부모님이 모두 희귀한 근육병을 앓고 있는 김현아(20.가명)씨의 대학입학금으로 100만원 등이 돌아갔다.

아름다운 가게는 2005년 상반기의 이익 중 일부인 3억2257만원을 383명의 개인과 62곳의 단체에 지원했다. 2002년에 시작한 이익나눔은 이번이 여섯번째이며 가게는 지금까지 모두 9억9546만원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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