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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원로 자주 어울려 새로운 화합 무드 조성|불황 터널 해쳐온 82년의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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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용한 것 같지만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재무여서 금년도 다사다난했다. l년 내 불황의 긴 터널을 헤쳐 오면서 사채·실명제 파동·금리인하·세제개혁·세금공세 등을 잘 타고 넘으면서 전화위복을 꾀해야 했다. 기업 환경이 격변했던 만큼 대응도 신속·절묘해야했다. 때문에 경영진의 인사바람이 1년 내 끊이지 않았고 2세 경영인들이 본격적으로 부상, 한국 재계는 「1·5세」세대에 접어들었다. 관계 인사의 재계 영입도 활발했으며 김한수 한일합직 회장, 정몽필 인천 재철 사장 등이 타계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 단체장의 얼굴도 몇몇 바뀌었고 이에 따라 각 단체들은 내부적으로 조용한 체질 변화를 이뤘다.
전경련 회장단을 중심으로 한 재계 원로들이 「원로」된 나이들을 실감해서인지 자주 어울려 함께 산업 시찰 길에 오르는 등 새로운 화합 무드를 이룬 것도 특기할만하고 기업의 국제화와 함께 재벌 총수들의 해외 나들이가 어느 때보다 빈번했다.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은 미국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 재계의 관록을 높였다.
이와 함께 82 서울 국제무역 박람회와 전두환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수행 등 재계공동의 큰 행사를 2개나 치러냈다.
올 한해의 재계일지를 간추려보자.

<인사 바람>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경영진의 이동이 특히 빈번했다.
2월 주총을 전후해 이경동(대우) 박형구 (금호전기) 최명걸 (새한 자동차) 안철환 (대한 통운) 배철환(서광산업) 최용권(삼환기업) 정문원(강원산업) 김용승(금성전선) 김영호(금성정밀) 박우병(삼척탄광) 변공수(한국투자금융) 구두회(금성 반도체)씨 등 많은 사람들이 새로 사장에 취임했고, 양윤세(전 동자부 장관·한양그룹 고문) 남욱(전 농수산부 차관·한양유통고문) 조충훈(전 재무부 차관·제일화재 사장) 차화준(전 기획원 차관보·범한 화재 사장)이용만 (전 재무부 차관보·중앙투자 사장)씨 등이 관계를 떠나 재계로 영입됐다.
2윌 주총 때도 그랬지만 올 한해 동안 지속된 각 기업의 경영진 인사는 「문책」의 성격보다는 불황 속 「안정」을 겨냥한 승진·보강 인사가 주류를 이른 것이 공통적이다.
부회장 제를 신설해 경영 체제를 다진 그룹은 럭키 (허준구 부회장) 한양(안승렬 부회장) 국제(손상모 부회장)등 3그룹이나 된다.
한편 올 들어 망조 (최용권 사장) 남광토건(배영준 부희장) 한국유리(최영 사장) 한일 합섬 (김중원 사장) 강원산업(정문원 사장) 풍한방직(김정우 사장)등 6개 그룹이 창업 2세에게 경영대권을 거의 물렸고 현대와 같은 경우는 정회장의 6남 몽준씨가 5월 대폭 인사를 계기로 주력인 현대 중공업 사장으로 부상. 한국 재계가 본격적인 1·5세대에 들어섰다는 말이 나왔다.
연말에는 다시 최각규 전 상공장관(한양화학 사장). 유각종 전 동자부 차관(고려종합 화학 사장)등 굵직한 관계 출신들이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간 재계를 떠난 인사로는 박세영 전 대우실업사장, 나웅배 전 한국타이어 사장, 유헌상 사장, 조해형 전 쌍룡제지 사장 등이 있다.

<경제단체>
신병현 전 부총리와 이동찬 코오롱 그룹회장이 각각 무역회장과 경영자 총 협회 회장에 새로 선출됐고 대한상의는 5월에 l5년만의 선거다운 선거를 통해 정수창 의장 체제를 굳혔다.
전경련은 체육회장을 맡은 정주영 회장 후임의 하마 평만 무성할 뿐 뚜렷한 후계자가 떠오르지 않고 있다.

<원로 동정>
올해 재계 원로들은 보기 드문 화합 무드 속에 국제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등 서로 관록을 높이는 「다복」한 한해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전경련 회장단을 중심으로 재계 원로급이 사이좋게 버스를 타고 두 번이나 울산과 수원의 중화학·전자 공업단지를 다녀왔고 최근에는 역대 전경련 의장들이 한자리에서 이마를 맞대고 재계 20년을 회상하기도 했다.
올해는 또 각 그룹의 창업 주들이 학위 수여식 석상에서, TV 프로에서, 또는 그룹 사장단의의 석상에서 자신의 경영 철학을 소상히 밝힌 기회도 빈번했다. 1·5세대를 맞은 한국재계의 l대들이 이제 그야말로 원로생활에 들어선 것이다.

<기업 흥망>
국내외 여건이 힘들었던 데다 잇단 경제사건과 충격조치로 기업들은 어느 해 보다도 세찬 단련을 받았다.
공영토건·일신제강· 라이프·삼호·삼익 등 장 여인 사건의 한복판에서 시달림을 받은 기업들 말고도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통을 받았고 공영 토건은 법정관리로 들어갔으며 일신제강은 끝내 회생하지 못한 채 포철이 인수해갔다.
역시 원로급에 드는 주창균 일신제강 회장은 옥고를 치렀고 전경련은 드물게 주 회장의 석방을 탄원하는 건의서를 관계 요로에 냈다.
또 속성으로 커 관심을 모았던 금문이 도산했고 오랫동안 은행관리를 받아오던 고려 원양도 올 초부터 청산 절차에 들어갔으며 합판 업계의 정리 작업이 이루어져 대명목재와 광명목재가 정리됐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는 진통 끝에 정부가 교통정리를 포기, 올해 영업실적이 오히려 나아졌고 미 다우 케미컬이 한국에서 완전 철수, 한국화학 그룹이 한양 화학을 인수하는 등 재계 개편이 꾸준히 이뤄졌다. 최근에는 미 GM이 새한 자동차의 경영권을 완전히 대우로 넘겼다.
이와 함께 앞당겨진 시은 민영화 작업 속에서 현대·대우·삼성·대림·럭키·동아건설 등 대기업들이 치열한 은행 쟁탈전을 벌였고 또 한국화약·삼환기업·삼부토건·럭키·동부그룹·동아건설 등이 앞다퉈 단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재벌의 금융업 진출이 러시를 이뤄 국회에서까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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