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가 폭락이 부른 신흥국 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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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제유가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가운데 원유수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디폴트(대외채무불이행)에 빠질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방어를 위해 지난 16일(현지 시간)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10.5%에서 17.0%로 하룻밤 새 무려 6.5%포인트나 인상했으나 통화가치 하락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디폴트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산업기반과 금융구조가 취약한 신흥국으로 위기가 번질 우려가 크다.

 이제 세계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신흥국들은 외환위기의 파고 앞에 그대로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 바야흐로 산유국발 국제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외환위기가 다른 신흥국으로 확산된다 해도 당장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들 국가에 대한 우리나라의 투자액이 그다지 많지 않고,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아직은 넉넉하기 때문에 위기가 즉각 전염될 가능성은 작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마냥 손을 놓고 방심했다간 자칫 큰코다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증시에서도 유가 하락이 본격화된 지난 10일 이후 1주일째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가 이어지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신흥국 위험이 커지면서 국제 투자자들의 투자 재편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우리나라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만일의 경우까지를 예상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세계 금융시장의 급변동과 함께 유가 하락세와 그로 인한 에너지 시장의 재편과 세계경제 판도의 변화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유가 하락으로 우리의 에너지 비용이 절감되는 이점도 있지만, 산유국의 경제 파탄과 그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위축이 우리의 수출 수요를 줄이는 역효과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세계 에너지 시장의 재편 이후 세계경제 판도의 변화에 따른 대응책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