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 이창호의 결정타, 흑 9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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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39기 KT배 왕위전'
(96~114)
○ . 도전자 옥득진 2단 ● . 왕 위 이창호 9단

선혈이 낭자한 옥득진 2단이 96으로 푹 찌르고 나왔다. 묘수에 걸려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고만 백△ 한 점에 대한 보복이다.

이창호 9단의 다음 한 수는 어디일까. 검토실의 프로들은 A로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하변은 96으로 뚫렸더라도 뒷맛이 있다. 그러나 형세가 우세한 만큼 이창호의 성격상 차분히 다가서며 훗날을 도모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9단은 예상을 뒤엎고 97로 바로 움직였다. 10대 시절부터 수를 보고도 보류하기를 밥 먹듯 해온 이창호, 그러나 그 느릿하고도 은근한 이창호도 최근엔 '즉결 처분'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옥득진의 눈이 크게 떠진다. 큰일이다. 97은 보면 볼수록 오금이 저린 맥점이다. 그렇더라도 바로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백은 아무튼 98로 가로막는 한 수. 이때 99로 모는 게 수순이다. '참고도 1' 백 1로 하변을 잡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흑 2로 빵 때려내면 좌변 흑집이 하변 백집과 비슷해져 전체적으로 실리가 상대가 안 된다.

그래서 100 뻗었고 101 끼워 수가 나고 말았다. 필연의 수순이라지만 백은 한 수 둘 때마다 깨진 유리조각 위를 걸어가듯 아픔을 느낀다. 110으로 끊어 한 점을 잡았다고는 하나 하변이 통째로 흑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 일대의 전전은 백의 완패라 할 만하다.

이창호 9단의 흑 111에 모두 모호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이 수에선 다시금 '옛날의 이창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참고도 2' 흑 1로 빵 따내면 바둑은 대차다. 그러나 이창호는 중앙 대마가 공격받을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부터 봉쇄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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