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이혼할 것 같다" … 이 말이 정윤회 문건 만든 풍문(風聞)의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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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 문건’ 진원지는 정씨의 전처 최순실씨를 언니로 불렀던 김모씨 등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붉은 원 안은 최씨의 서울 신사동 빌딩 5층에 입점한 김씨의 의류 가게 간판(2012년 4월 촬영). 현재 비어 있다. [출처 네이버 지도]

세간을 뒤흔들고 있는 ‘정윤회 동향 문건’에 담긴 내용이 어떻게 취합됐는지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발단은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58·최서원으로 개명)씨로부터 이들 부부의 사생활을 전해 들은 여성 김모씨가 박동열(61)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에게 관련 내용을 전하면서였다. 15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는 문건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1일 김씨를 소환 조사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박관천(48) 경정이 지난 1월 작성한 정씨 동향 문건의 제보자로 박 전 청장을 지목하고 정보의 출처를 역추적해 왔다. 박 전 청장의 휴대전화 송수신 내역을 통해 김씨와 광고회사 대표, 음식점 사장, 정보 담당 경찰관 3~4명을 추려냈다. 김씨는 2012년께부터 이달 초까지 최순실씨의 서울 강남 신사동 M빌딩 5층에서 모피를 취급하는 고급 의류점을 운영해 왔다. 김씨는 박 전 청장과는 친분 관계가 있다고 한다. 검찰은 박 전 청장의 정보원 가운데 정씨 부부와 직접 접촉한 사람은 김씨가 유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건물주인 최씨와 가깝게 지냈다”면서 “최씨가 말해준 남편(정씨)과의 갈등, 이혼 고민 등을 박 전 청장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씨가 자신에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 “이혼하게 될 것 같다” 등 내밀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실제 최씨와 정씨는 지난 5월 이혼했다.

 박 전 청장은 앞선 검찰 조사에서 “최씨를 ‘언니’라고 부르는 김씨로부터 정씨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이 김씨에게만 말한 내용이 외부로 흘러 나간 사실을 뒤늦게 알고 김씨에게 화를 내며 “나가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달 초 점포를 비웠다.

 검찰은 박 경정이 ‘십상시 회동’의 거점으로 지목한 서울 강남의 J중식당 역시 정씨 부부가 가족 모임을 한 것이 김씨→박 전 청장→박 경정을 거치면서 비밀회동으로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씨는 “정치인 모임 같은 건 모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정씨 부부는 J중식당 대표가 과거 운영하던 청담동의 Y중식당을 딸(18) 등과 자주 들렀다. <중앙일보 12월 6일자 3면

 검찰은 김씨 외에도 5~6명의 제보자와 박 전 청장, 박 경정 등을 거치면서 정씨 관련 풍문이 합쳐져 문건이 작성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건 첫 페이지에는 ‘정씨가 강원도 홍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상경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하지만 정씨는 지난 10일 검찰 조사에서 “홍천에 지인이 살고 있어서 가끔 들르는 건 맞지만 거주한 적은 없다”고 했다. 검찰은 객관적인 기록을 찾지 못해 정씨의 ‘홍천 거주설’은 잘못된 정보로 결론 내렸다. ‘오토바이 상경’은 정씨의 취미가 각색됐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정씨는 고급 오토바이를 즐겨 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토 정’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한편 최씨는 지난달 28일 문건 보도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자제하고 있다. 최씨는 넷째 언니와 평소 자주 찾았던 서울 압구정동의 Y병원에도 발길을 끊었다. 이 병원 원장은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따님이 어려운 와중에 금메달을 땄다며 좋아했던 것 외에는 사생활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 지난달 이후 병원을 찾은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유정·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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