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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봉 "택시 타고 다니며 시신 버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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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수원 팔달산 ‘장기 없는 시신 사건’의 피의자 박춘봉이 14일 영장실질심사 후 수원지법을 나서고 있다. 경찰은 흉악범의 신원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박춘봉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했다. 그는 이날 구속됐다. [뉴시스]

지난 4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 부근에서 발견된 장기 없는 시신 몸통의 주인공은 목이 졸려 숨졌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의견이 나왔다. 이는 “말다툼 중에 밀었는데 벽에 머리를 부딪혀 숨졌다”는 살인 피의자 박춘봉(56·중국동포)의 진술과 엇갈리는 것이다.

 14일 경기경찰청에 따르면 국과수는 이날 “시신에 목이 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있었으며, 이것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구두 통보해왔다. 목을 조른 흔적은 몸통이 아니라 나중에 찾은 머리 부분에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공식 서류 통보가 아니어서 국과수는 구체적인 증상이 무엇인지까지는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국과수 통보를 받은 경찰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계획적 살인이 아닌지 박춘봉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밀쳤는데 벽에 머리를 부딪힌 뒤 쓰러졌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희생자는 박춘봉의 동거녀인 중국동포 김모(48)씨다.

 박춘봉은 시신 발견 일주일 뒤인 지난 11일 밤 수원시 팔달구의 한 모텔에 또 다른 여성 한 명과 함께 들어가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처음 그는 범행과 관련해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경찰이 그의 집에서 찾아낸 김씨의 핏자국을 내밀자 “벽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진 사체를 훼손한 뒤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 버렸다”고 시인했다.

 경찰은 몸통 말고 다른 부분을 박춘봉이 버렸다고 진술한 곳에서 찾아냈다. 그는 훼손한 신체를 몸통 발견한 지점에서 가깝게는 약 400m, 멀게는 5.2㎞ 떨어진 야산 등지에 파묻었다. 신체 다른 부분도 몸통과 마찬가지로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 버렸다. 박춘봉은 경찰에서 "택시를 타고 다니며 이곳저곳에 시신을 버렸다”고 진술했다.

 박춘봉은 시신을 훼손한 이유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경찰은 살해와 시신 훼손·유기 과정에 공범이 있는지도 캐묻고 있다. 다른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춘봉은 2008년 중국에서 위조 여권을 만든 뒤 1년짜리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온 불법 체류자다.

 당초 장기 없는 시신 몸통 수사는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몸통이 누구의 것인지 신원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8일 피해자 김씨의 가족에게서 “지난달 26일부터 김씨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DNA 검사를 통해 시신이 김씨임을 확인했다.

 그래도 범인의 윤곽은 잡히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결정적 제보자에게 5000만원 포상금을 준다고 내걸었다. 그러자 바로 신고가 들어왔다. “월세 계약한 이웃이 보름 정도 보이지 않는다. 방에는 검은 비닐봉투가 많더라”는 제보였다. 경찰은 제보에 따라 확인한 월셋방에서 피해자의 혈흔을 발견했고, 계약자가 박춘봉임을 파악한 뒤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통해 지난 11일 그를 검거했다.

 범인은 붙잡혔지만 수원시민들은 2012년 역시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중국동포 오원춘(44) 사건까지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다. 김영주(34·여)씨는 “범인이 붙잡혔고, ‘장기밀매 조직의 소행’이라는 얘기가 헛소문으로 판명됐지만 무서워 혼자서는 절대 가까운 산에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수원역 인근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김모(51·여)씨는 “오원춘·박춘봉 때문에 대부분 선량한 중국동포들까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박춘봉을 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또 조만간 신고포상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제보자에 대한 포상금 규모를 결정할 예정이다. 익명을 원한 경찰 관계자는 “검거에 워낙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만큼 5000만원을 전액 지급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수원=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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