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發 축구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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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국적인 호우로 K-리그 전경기가 순연된 지난 7일 오후. 대전시 한밭종합운동장 내에 자리잡은 대전 시티즌 구단 사무실은 저녁 늦게까지 몸살을 앓았다.

대전-부산전 순연 여부를 알고 싶은 대전시 축구팬들이 끊임없이 전화벨을 울려댔기 때문이다. 걷잡을 수 없이 전화가 밀려드는 통에 박문우 이사, 이영해 부장, 유운호 과장 등 임직원 전원이 전화통에 매달려야 했다.

유과장은 "정말 수천통은 받은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경기 연기에 항의하는 팬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김은중이 부상이어서 걱정했는데 시간을 벌게돼 잘됐다'는 반응이 주류예요. 팬들 반응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거듭거듭 놀라고 있어요." 박이사의 목소리도 들떠 있었다.

전례없던 일이다. 전에는 경기가 열리는지 마는지 관심조차 없었던 대전 팬들이 갑자기 극성스런 팬으로 '돌변'한 것이다. 축구가 대전 특유의 '느긋함의 문화'를 바꿔놓은 셈이다.

대전의 전 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대전 TJB방송의 인터넷 사이트는 최근 개국 이래 처음으로 '다운'됐다. 엄청난 접속 물량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TJB의 스포츠 중계 관계자는 최근 구단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난생 처음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수고한다. 고맙다'는 격려 메일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대전이 난리다. '양반 도시'답지 않게 체통 따위는 아예 벗어던진 모습이다. 5승2무1패로 K-리그 2위를 질주하는 대전 시티즌이 '양반 가슴' 저 아래에서 뽑아올린 불길이다.

지난 4일 수원 삼성전엔 무려 3만5천명(유료관중 2만7천명)이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고작해야 몇 천명 정도가 기웃거렸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올해 연간 회원권 판매 목표액 3억원은 이미 초과(5억원)했다. 지금까지 홈 4경기에서 올린 입장수입만 3억원이다. 지난해 입장 수입금 총액(7억7천만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각계 지원도 홍수처럼 밀려든다. 충청하나은행이 5억원(예정), 상공회의소가 3억원, 충남가스가 2억원을 내놓았다. 향토기업인 금성백조주택도 5천만원을 선뜻 희사했다.

여기에 시청(10억원).월드컵조직위(10억원).대주주 계룡건설(12억원)의 지원금까지 합치면 올해 예산 59억원은 시즌 1라운드도 채 끝나기 전에 거뜬하게 채워질 전망이다.

요즘 대전 시민의 새 취미는 단연 축구보기다. 세사람만 모여도 축구얘기를 한다. 시티즌 김광식 사장은 이를 '스포츠를 통한 지역 단합'으로 풀이한다.

"대전시민의 구성은 복잡해요. 서울.이북.영남.호남.대전지역 출신이 20%씩 섞여 있어요. 단합이 되기 어렵지요. 그러나 축구 덕분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축구가 지역 문화를 바꾼 거죠."

김사장의 목소리에도 열기가 가득했다.

대전=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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