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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숙종여인 정재파군 무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고숙종씨(47·여·서울정능동290의41)는 보석으로 풀려난후 허리운동을 위해 오늘도 마당의 펌프질을 한다.
서울원효로 윤경화노파피살사건의 범인으로 구속기소되어 3백4일만에 석방된 고씨. 펑소 건강했지만 경찰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로 허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법정에 섰던 그였다.
『6월17일 풀려난후 의사인 친정아버지께서 허리통증 치료를 위해 매일 30분정도씩 펌프질을 하라고 시키셨지요. 처음엔 딸의 부축을 받아 빨랫줄을 두손으로 붙잡고 걸음마 연습을 했는데 펌프질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경찰서 부근만 지나도 치가 떨린단다.
아직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중이어서 그래도 말투는 조심스럽다. 연행된후 손목이 탈골돼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않아 요즘도 계속 침을 맞는것이 일과중의 하나라고 했다.
피살된 윤노파를 따라 22년간 조계사에 다니며 합창단장을 하는등 불공을 드렸지만 이번 사건후 기독교로 바꿔 집에서 1백m쫌 띨어진 성수교회 신자가 됐다.
『저를 고문하던 경찰관 5명이 저와 같은 부처님목걸이를 걸고 있더군요. 그것을 보는 순간 저의 목걸이를 떼어 버리고 주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더니 경찰관들이「미친×라고 하더군요.』
어릴때부터 기독교 신자로 이화여고 종교부장을 지낸 고씨라 십자가가 낯설지 앓다. 지금 다니는 교회는 평소 두딸이 다녀 항소심부터는 목사가 변호사를 소개해 주는등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직 성한 몸이 아니라서 집안일은 큰딸(21)에게 맡기고 주로 성경공부로 시간을 보낸다.
고씨가 구속되면서 검찰청을 그만둔 남편 윤영배씨(49)는 5월부터 서울봉천동에 사법서사 사무실을 냈지만 계속 적자운영으로 생계엔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했다.
주수입원은 점원으로 취직한 둘째딸(20)의 월급뿐이다. 당장 경제적 타격이 가장큰 문제지만 친정의 도움으로 급한 불은 꺼나간다. 올해의 김장도 친정에서 해줬고 쌀도 사줬다. 모교인 이화여고·서울대음대 동창회의 도움도 적잖이 받았다. 친정쪽과는 빈번한 교류가 있으나 시집쪽 식구는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 재판과정에서 동서가 검찰증인으로 나서는등 집안간의 감정이 아직은 날카롭다.
다만 숨진 윤노파의 재산을 배분하자며 남편윤씨의 사무실에 시가친척들이 찾아온 적이 있으나 무죄확정후로 미루어 놓았다.
『제가 잡혀가자 아이들이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대문을 나서야 했었대요. 이웃 아줌마들이 많이 위로해 주어 이웃사촌의 고마움을 깨달았지요.』
중1짜리 막내딸이 엄마때문에 학교에 못다니겠다고 울어 한때는 집안이 초상집이 된적도 있었다. 그동안 받은 타격이야 이루 말할수 없지만 확정판결후 하나씩 정리해 나갈 작정이란다. 고문경찰관들에 대한 고소,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 수기작성, 보험회사 외무사원으로 수백만원의 미수금정리등이 남은 문제들. 출감후 아직 원효로 사건현장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피고인의 자백이 임의성은 있으나 신빙성이 없다.』
고씨에 대한 무죄판결 이유다. 이 몇마디가 검찰·경찰등 수사기관에 준 충격은 엄청났다. 증거 재판주의가 재확인됨과 동시에 「자백이 증거의 왕」이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고씨에 대한 판결문이 강력사건 수사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면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 사건의 정재파군(22·인하대3년) 판결문은 아예 쐐기를 박은 셈이다. 정군은 검사 앞에서 자백을 했으나 같은 이유로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강력사건의 유죄를 위해서는 직접적인 물증을 요구하고 나선것이다. 그후 검찰·경찰은 강력사건 수사방법을 전면 재검토하고 대책수립에 나섰다. 1월24일 구속되어 3백9일만인 지난달 29일 풀려난 정군은 구속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명랑하다는게 어머니 이을정씨(44)의 말.
어머니의 기타반주에 맞춰 「선구자」를 합창하는 모습이 여간 정겹지 않다. 정군은 출감 다음날부터 9일간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건강진단을 받았으나 모두 정상으로 밝혀졌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사회가 이렇구나하고 배운것도 많아요. 내년에 복학해서 졸업을 한후 대학원에 진학해 학자가 되고싶어요.』
부모는 아들을 미국에 유학시키고 싶으나 영어실력이 모자라 걱정이라고 농담을 했다. 가족들은 「여대생」 「해외연수」 「박상은」 등 사건관계있는 낱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쳐 언제나 아픈 상처를 완전히 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두사건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이 인권옹호 차원에서 반드시 겪어야할 과도기적인 시련이었다며 이를 앞당겼다는 의미에서 올해가 획기적인 해이며 이것은 누구도 막을수 없는 대세의 흐름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글=권일기자><사진=이창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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