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자사회|박중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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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원은 계장을 「씹는다」. 계장은 과장대리를 씹는다. 과장대리는 과장… 이런 식으로 부장정도까지 올라가면 턱이 지쳐버려 더 이상 꼭대기로 씹으러 올라가기 어려워진다. 그 덕으로 경영측은 한번 씹혀봤으면 해도 그럴 기회를 얻기 좀처럼 어렵다. 그러니까 당신네 나라들에서처럼「장」이라는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당신네들의 경제를 일으키고 있는건 대소간 이들 장들이다. 그리고 이들 장들을 만들어준 건 공자님이다. 그러니까 공자님은 당신네들의구세주다 .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등을 신흥공업국이라는 영어 두문자를 따 「니크스」란 묘한이름으로 부르고, 이들 사회의 공통된 유형으로 「신공자사회」란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내고 해서 도대체 그게 무슨뜻인가 하고 있었던 참이었었다. 듣고보니 어렵잖은 걸 모르고 있었나 보다.
이걸 내게 깨우쳐준건 애초 이런 신단어를 만들어낸 대학자도, 대논설객도 아닌 풋나기 동양통 지망생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풀이에 장님 코끼리 더듬기(부분적으로야 얼마나 옳으냐)만큼의 진리는 있다.
하필이면 「씹는」얘기에다 견준건 대단히 영국적이라고 할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노사간이 서로 동족아닌 개와 원숭이 사이처럼 눈을 흘기고 으르렁대는 게 소위 영국병이라는 것의 으뜸가는 증상이고, 영국병이라는게 따지고보면 세계에서 제일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가 이로인해 누구보다 한발짝 앞서 앓고 있는 병이고 보면 우리로서도 봐둘 일이다. 그건 그렇고….
장이란 것의 값어치란 역시 씹히는뎨 있지 않나 여겨진다, 자리 크기에 알맞게 장들은「목에다 힘을 준다」. 그래서 씹힌다. 목에 힘을 주는 것은 책임을 지는 자세다. 또 그래야 권위라는 게 선다. 요새 소위 선진공업국가들이 겪는 고충의 근본이란 기성의 모든 권위가 맥을 못추게된 데 있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소 장들이 몸을 씹혀서 일종의 권위질서의 밀거름노릇을 하고 있다면 그것도 한가지 살신성인이다.
사실 죽기전에 뭐든 장자한번 달아야 하겠다는것도 그저 허영허욕으로 돌릴 게 아니다. 공자님 가르침에 따르면 입신양명하고 영문광예면 그게 효의 종극이다. 그러니까 장이 되는 건 효하는 일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자본주의를 일으키는 데서 한 청교의 구실을 우리의 명교가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효해서 좋고, 나라에 이바지해 좋고…. 얼마전 어느 시인 한분이 「파한잡기」에서 한것처럼 『웬 장자붙은 사람이 이렇게 많으냐』할 것 없다. 여기 런던에도 대사, 이사등 몇몇만이 불쌍하게 없지 딴 한국인 또는 동양인이면 거의가 장이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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