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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회고록 「신의를 지키며」국내 독점 연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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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란정부 내에서도 이 무렵 혼란이 끓이질 앉았다. 이란의 의장은 인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관리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경질되고 말았다.
-이란외상(자헤디)이 해임되고 「고트브자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새 외상에 임명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란 고위관리 가운데 어느 누구든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행동을 하기만 하면 그는「호메이니」노선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즉각 경질되곤 한다. <일기 l979년11월28일>
11윌15일, 「데이비드·록펠러」(체이스 맨해턴 은행회장)가 전화를 걸어봤다. 「록펠러」는 「샤」가 자신의 미국체류 문제 때문에 미국정부가 곤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이 때문에 「샤」는 수일 내로 미국 땅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샤」는 라듐치료에 효과를 보아 이제는 약간 앉아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기는 했다.
나는 미국을 떠나겠다는 「샤」의 제의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나는「록펠러」에게 「샤」가 미국을 떠난다는 것은 미국이 이란의 압력에 굴복하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그의 출국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록펠러」는 「샤」의 미국 입국으로 지게된 자신의 책임을 하루속히 벗어 던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샤」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샤」의 출국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미국을 떠남으로써 이란이 인질문제 해결의 길을 트고 어수선한 이란정국이 정상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샤」병세 점차 호전>
-상오 6시30분쯤, 「밴스」국무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랄 소식을 전해왔다.
멕시코 정부가 돌연 태도를 바꾸어 「샤」의 재 입국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멕시코대통령 「호세·로페스·프르티요」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브레진스키」와 「먼데일」에게 전화로 그들의 견해를 물어봤으나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멕시코의 행동에 대해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일기 l979년11월29일>
나는 몹시 화가 났다. 멕시코는 이란에 외교관을 두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 인들을 모두 이란에서 이미 철수시켰으며 그 나라의 석유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멕시코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샤」의 재 입국을 환영하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아무런 사전연락도 없이 태도를 돌변시킨 것이다.
「로페스」자신이 마지막 순간에 가서 심경변화를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이 같은 멕시코의 자세급변은 미국에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에게 구세주로 나타난 사람은 이집트의 「사다트」대통령이었다. 「사다트」는 즉각 「샤」에게 이집트로 다시 오도록 초청했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상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다른 아랍국가들은 물론 일부 이집트 국민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으며 곤경에 처해있던 「사다트」대통령으로서는 「샤」의 초청이란 자신을 희생시긴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애엔 피해줄까 주저>
「사다트」는 「샤」와 그의 가족들을 돕고 싶어했으며 미국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하고자 했지만 우리는 그에게 또 다른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고르발」이집트 대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는 이집트의 모든 고위관리들이 「샤」의 이집트 입국으로 야기될지도 모를 결과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먼데일」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선택은 「샤」가 일시적으로 이집트로 가도록 도와주든가 아니면 「샤」의 병세가 호전될 때까지 그를 미국의 군사기지로 옮겨 그사이 「샤」의 영구피난처를 찾아주는 길뿐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먼데일」은 두 가지 중 「샤」를 이집트로 보내는 쪽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나는 「브라운」(국방장관)에게 미군기지 중 「샤」가 머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를 물색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 무렵 「고르발」주미 이집트대사는 「무바라크」부통령(현 대통령) 과 상의했다. 그들은 「샤」가 이집트로 오게될 경우의 정세와 그시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나「사다트」의 의지는 단호하다고 말했다. 나는 「샤」가 이집트로 가기를 희망했으나, 이 일로 해서 「사다트」가 어떤 피해를 보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사다트」도 「샤」가 미국에 머무르게 되기를 바라지만 이 때문에 나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원치 않고 있었다. 이제 내가 결정을 내릴 때가 왔다. 「브라운」이 전화로 「샤」가 체류하기에 가장 적합한 미군기지는 포트 샘 휴스턴이나 래클랜드 공군기지라고 보고해 왔다. 두기지 모두 텍사스주의 샌앤토니오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밴스」는 국무성 관리들이 뒤늦게나마 아르헨티나·남아프리카·오스트리아 등과 접촉을 하고 있지만 어느 한 나라도 가까운 시일 안에「샤」를 받아들일 전망이 없다고 보고했다. 나는 「밴스」에게 그런 얘기는 더 이상 나에게 하지 말고 당장 내일(일요일)새벽 중으로 「샤」를 미군기지로 옮길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일기1979년12월1일>
이튿날 아침 「샤」는 래클랜드 공군기지로 옮겨졌다. 며칠 후「밴스」는 코스타리카·파라과이·과테말라·아이슬란드·통가·바하마·남아공·파나마 등의 지도자들이 「샤」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중 몇몇 나라들의 태도는 매우 모호했으며. 실제로 「샤」를 맞아들일 수 있는 나라는 남아공과 파나마 두 나라 뿐 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

<파나마-샤, 서로 환영>
파나마는 진정 우리를 돕고 싶어했다. 그 나라는 해안에 인접한 한 섬의 별장에 「샤」가 머물러도 좋다고 거듭해 알려왔다. 나는 이 문제를 협의하도록 파나마 운하조약 협상 때「토리호스」대통령과 친교를 맺은, 해밀턴·조던」(비서실장) 을 파나마로 보냈다. 「조던」은 도착즉시 「샤」를 받아들이겠다는 「토리호스」의 태도가 확고하다고 보고했다.「조던」과 「로이드·커틀러」(법률고문)가 다음날 텍사스에서 「샤」와 만나 이 문제를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 「샤」부부는 파나마에 체류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샤」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점은 파나마 별장에 적절한 통신수단이 갖춰져 있는지에 관해서였다. 왜냐하면 「샤」는 「호메이니」와 다른 이란 지도자들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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