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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우리나라 정규직은 과보호되고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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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난데없이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정규직의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규직 전환인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정규직도 비정규직처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서 비정규직과의 차이를 줄이겠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렇게 되면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하향 평준화되고 소비가 위축돼 내수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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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경직성 해소해야

이호성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

지금 우리 노동시장에는 기업들을 짓누르고 있는 현안이 있다. 통상임금, 정년연장, 휴일근로 문제다. 이 과제는 그동안 노사는 물론 정부와 법원에서도 인정해 왔던 질서와 관행들이 갑자기 잘못됐다며 기업에 추가 부담을 요구하고 있는 사안이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 이후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올해 통상임금 인상률은 평균 2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년 60세 연장법이 2016년부터 순차 적용을 앞두고 있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은 지지부진하다. 결국 세계 최고 수준의 연공형 임금체계에서 오는 부담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문제 역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지만 국회에는 이미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일근로 할증률을 두 배로 늘리는 법안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판결이 어떻게 나도 법정 근로시간 한도는 10~20% 이상 단축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동안 근로시간 조절을 통해 낮은 생산성을 보완하고 경기 변동과 수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던 기업, 특히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 근로시간마저 줄어든다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들 3대 과제가 인건비 부담을 많이 증가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게 더욱 큰 문제다. 인건비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선 효율적인 인력 활용이 필수적이지만 중소기업들은 이미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대기업의 고용 조정은 심지어 ‘살인’에 비유되며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09년 회사가 청산 직전까지 몰렸지만 고용 조정에 반대하는 노조의 극렬한 저항에 직면했던 쌍용차 사태, 국내 사업장의 경쟁력 저하로 수주 실적 제로에 이르렀지만 인력 조정은 안 된다며 장기간 고공 농성을 초래한 한진중공업 사태를 보면 이 땅에서 기업의 고용 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노동시장이 이렇게까지 경직적으로 된 것은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강경하고 비타협적인 투쟁방식 때문이다. 또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내 노동법의 강력한 고용 보호 및 노조 보호장치 때문이다. 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보호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며, 노조가 파업을 해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체인력 투입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엄격한 해고 규정으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거나 업무수행 부적격자까지도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배송업체 등 사업장 내에 들어와 있는 협력업체 근로자까지 무조건 직접 고용하라는 법원 판결까지 나오고 있는 판이다.

  기업은 고용 조정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도달하기 전에 생산성 향상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임금과 근로시간 조정, 탄력적 인력 운용 등 사전적 조치와 자구노력을 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현행 노동법제하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 노조의 동의와 협조 없이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로 인해 합리적 인력 운용의 퇴로가 막혀 버린 기업들은 결국 채용을 기피하게 되고, 노동시장에선 이중 구조가 심화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은 이처럼 대기업에서 막혀 있는 고용 경직성을 풀어 기업 경쟁력과 청년의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장의 활력을 되살려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미 독일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정규직 노조의 양보와 사회 안전망 정비를 통해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하고 노동시장 개혁을 달성한 바 있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우선 대기업 정규직부터 양보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신규 채용을 늘리고 협력업체를 지원한다면 결과적으로 경제 전반에 걸쳐 더 많은 일자리와 내수 활성화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호성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

노동시장 경직 주장은 억지다

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난데없이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정규직의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정규직 전환인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정규직도 비정규직처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서 비정규직과의 차이를 줄이겠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렇게 되면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하향 평준화되고 소비가 위축돼 내수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는 “정규직은 한 번 들어가면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돼 기업이 부담스러워 한다. 그래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개별기업의 임금체계는 개별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사항이지 정부가 개입할 성질이 아니다. 기업에 따라서는 높은 숙련과 경험이 요구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단순작업을 하는 곳도 있을 것이며 연구 결과를 평가하는 곳도 있을 수 있다. 임금체계가 기업의 생산성과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리고 많은 기업에선 연공서열과 함께 성과급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등 기업 실정에 맞는 임금체계를 갖추고 있다. 정년을 늘리면서 노사가 자율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도 여러 곳 있다. 정부가 굳이 노사 간 갈등을 유발하면서까지 임금체계 개편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이나 정리해고 요건 완화의 이유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얘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결코 경직돼 있지 않다는 것을 각종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발간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관련 국제적 흐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1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다. OECD 평균은 10년이다. 한국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이 불안한 한국의 임시직 비율은 23.8%로 OECD 회원국 중 둘째로 높다. OECD 회원국 평균이 11.8%이니 한국이 두 배나 더 높다. 집단해고 지수는 OECD 회원국 중 3위, 일반해고는 17위로 중간 수준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정년이 57~58세 정도라고 하지만 실제 정년 나이는 49세로 정년까지 가는 노동자는 드물다. 그 전에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을 당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이미 법적으로 경영위기 시에는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지난해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 숫자는 38만 명으로 IMF 경제위기 직후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상시적인 해고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해외 사례를 들며 우리도 외국처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실직된 노동자를 보호하는 외국의 사회 안전망은 언급하지 않는다. 해고와 사회 안전망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는 사회 안전망이 취약해 실업자가 되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고 가정이 파탄 난다. 그래서 한국에서 실업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5년간 25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끊었다. 우리나라는 실직자가 되면 하루 구직 급여 상한액이 4만원이다. 이마저 재직기간에 따라 90∼240일이 최대치다. 한 달에 100만원 안팎을 길어야 8개월 정도 받을 뿐이다.

 반면 유럽연합 국가들은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독일은 실직되면 3년간 실직 전 임금의 90%까지 수당으로 지급 받는다. 덴마크는 해고자에게 실직 전 임금의 최대 90%를 2년간 지급하며, 네덜란드도 최대 90%를 3년간 주고, 스웨덴은 실직 전 임금의 100%를 1년간 지급한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나라 복지 수준에서 고용 유연화를 외국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부는 정리해고 요건을 더 강화하고 사회 안전망부터 튼튼히 해야 한다.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정부가 노동자를 해고할 생각부터 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