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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개정의 방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예산국회의 핵심을 이루는 세법개정안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으나 국정심의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지을 수가 없다. 여의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국정의 어느 하나라도 국민생활과 직결되지 않는 부분이 없겠지만 세법만큼 직접적인 영향과 관심이 큰 부문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중요한 사안이 충분하고도 납득할만한 토의와 조정을 거치기 어려울 만큼 시한에 쫓기고 있음은 경위야 어떻든 유감스런 일이다. 이런 촉박한 시한을 남겨두고 중대한 사안이 소홀히 졸속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소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예산국회의 가장 큰 차질이 실명제를 둘러싼 정부여당의 정책혼선에서 비롯되었지만 주요 세법개정에 임해온 각 정당의 기본자세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내년 예산과 국민부담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히 내년경제와 정책지향의 기본방향을 검토하고 수렴된 합의에 따라 이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을 다각적으로 연구 조정하는 과정이 있어야한다.
불행히도 이번 국회는 이런 과정이 불충분했다. 실명제 실시를 둘러싼 혼선이 그 핑계로 대신되기에는 예산과 세법개정안이 너무도 중대한 사안이다. 법정시한에 쫓기고있는 현실에 비추어 지금부터라도 실명제의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남은 시간을 최대한 성실히 활용, 국민부담의 적정한 조정에 여력을 쏟는 것이 의정의 본령임을 지적하고 싶다. 당면 세법개정안의 핵심은 역시 소득세와 법인세. 그리고 부가세가 될 것이다.
법인세는 여야 간에 최종합의를 거쳐 실명제의 후유증을 어느 정도 수습한 것으로 보이나 소득세는 아직도 여야 간에 상당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득세에 관한 한 어느 다른 세금보다도 형평이 더 강조되어야할 부문이므로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점에서 보면 현행소득세는 고쳐져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실명제가 무산된 지금으로서는 그 기본 틀을 바꾸지 못한 채 지엽적 손질에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최고 세율을 비롯하여 세율구조를 보다 응능 위주로 개편하는 쪽이 그나마 소득세의 기형화를 면하는 길이 될 것이다. 최고세율의 대폭인하는 실명제와 자산소득중과를 전제했던 것이므로 적절한 선까지 되 올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과거의 최고세율이 다른 부가적 조세와 합칠 때 지나치게 높았던 점에 비추어 여당 쪽의 대안인 55%선은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주요 쟁점이 되고있는 비 실명금융소득의 분리과세세율은 그 차등 폭이 지나치게 낮아 형식적인 차등화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부여당이 진정으로 실명제의 단계적 실시의지를 갖고 있다면 이런 비현실적 차등과세만으로는 기반조성의 실효를 얻기 어려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 간의 또 하나의 쟁점인 각종공제는 두 가지 원칙, 즉 저소득층의 조세경감과 소득비용의 합리적 고려에 집약시키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전자의 경우 여야 간에 합의된 월 50만원미만 소득자의 세액공제가 적정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후자의 경우는 필요 경비의 인정이라는 원칙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굳이 외국의 관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당한 소득경비는 당연히 인정돼야하며 이 점에서 보면 각종 교육비 의료비 보험부담 등은 정당하게 공제해야한다. 이런 근로비용은 상당부분이 국가재정에서 부담해야할 부분을 근로자가 떠맡고 있었으므로 더욱 더 그렇다. 이것은 세수문제 이전의 기본과제이므로 소득세의 합리화라는 측면에서 고려돼야할 것이다.
인적공제나 면세점의 지속적 인상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이 같은 근로비용의 적절한 인정이 무엇보다 우선돼야할 과제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정부는 국민에게 그 합당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할 것이다.
한편 실명제 파동에 휩쓸려 시대에 맞지 않는 특별소비세나 부가세의 합리화는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이들 세법도 경기와 경제구조변화에 맞추어 이번 기회에 적절히 재 보완 돼야 할 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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