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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안동 권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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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안동 권씨는 고려조의 사성이다. 시조는 김행. 그는 원래 신라왕실의 후예로 본명은 김행 이었다.
관직은 고창군(현재 안동)별장. 신라가 극도로 부패, 잇단 민란으로 국운이 기울어 가던 9세기 말엽,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를 침입, 경애 왕을 살해한다.
이에 격분한 김행은 견훤 군을 맞아 무찌르는 한편 김선평(안동 김씨 시조), 장정필(안동 장씨 시조)등과 함께 왕건을 도와 고려창업에 공을 세웠다. 그후 왕건은 이들 3명에게『삼한벽상삼중대국태사』란 각의를 내렸다. 그리고 이들 중 김행에게는『능병기달권(능히 기미에 밝고 권도에 통달함)』하다 하여「권」을 성으로 내리고 고창군을 안동 부로 승격, 식읍으로 하사했으니 그의 후손들이 관 향을「안동」으로 삼게 되었다.

<당대에 9명이 봉군>
권부는 고려 충렬·충의왕대에「권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
그는 자신은 물론 준, 종정, 고, 대, 겸 등 5명의 아들과 3명의 사위가 모두「봉군」되어 명성을 떨쳤다.『당대구봉군』은 역사상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것이「권문」의 자랑이다.
이밖에 충렬왕 때문과에 급제한 후 원나라의 만권당(학자들의 최고연구기관)에서 문명을 떨쳤던 권한공, 우왕 때 좌사간으로 재직 중 고려가 망하자 안동으로 낙향, 부사일군의 충절을 지킨 권정 등 이 고려의 명신 들이다.
권정은 조선개국 후 태종이 대사헌 벼슬을 내렸으나 이를 거절한 올곧은 선비였다.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안동 권씨는 3백59명의 문과급제 자를 배출, 찬란한 개화의 꽃을 피운다. 이는 본관별로 보면 왕족인 전주 이씨 다음가는 서열로 랭킹 2위. 이중『상신 40명, 공신 86명, 문형 6명, 봉군 69명 등을 배출했으니 이것이 권문의 긍지와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권태흥씨(55·안동 권씨 중앙화수 회장·태흥그룹 회장·봉제공협회장)는 말한다.
이밖에 안동 권씨는『사시』라 칭하는 4가지 자랑이 있다. 첫째 조선의 첫 문형(대제학=권근)을 배출했다는 것(전문형지시), 둘째 정이품 이상을 지낸 국가원로들의 교유 단체인 「기영회」를 처음 설립했다는 것(기영회지시·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권중화가 최초로 설립), 세째 성종7년(1476년)에 최초로「성화보」라는 족보를 만들었다는 것(족보지시), 네째 것「호당」에 뽑혔다는 것(호당지시)등 이 그것이다.
「호당」이란 조선조의 문관 중 젊고 유능한 인재를 뽑아 학문에만 전념케 했던 국비지원 교육기관으로 권근의 조카 권채(후에 제학에 오름)가 처음으로 뽑히는 영예를 누린 것.
태종 때 조선조 최초의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권근은 안동 권씨 제1의 석학. 왕명을 받들어『동국사략』을 찬 했다. 성리학자로서의 그의『입학도설』은 후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권중화·권진은 각각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 조선개국 후 중화는 영의정을, 진은 좌의정을 지냈다.
세종 때 정인지 등과 함께 유명한『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친 권제는 권근의 둘째아들. 이들 부자는 당대에 대제학을 지내 명성을 드높였다.
이밖에 조선의 인물로는「남인」과「서인」으로 대표되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권상하와 권대운, 그리고 을사사화이후 억울한 죽음을 당한 권발이 있다. 상하는 서인 송시열 등의 학 통을 계승한 기호학파의 중진.
그는 남인의 득세로 송시열이 유배된 후 초야에 묻혀 유학강론에 전념했다.
반면에 남인이었던 대련은 숙종 조에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라 세도를 부렸던 인물이다.
권발은 l545년(명종 즉위)을사사화 때 공을 세워 위두 공신에 올랐으나 정순명의 반대로 삭훈 되고 그후 반대파에 몰며 유배지에서 죽는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종되었다.
명종 때 우의정·좌의정·영의정 등을 지낸 권철은「권문」을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임진왜란의 영웅 도원수 권율은 그의 아들이다.

<권율 장군도 안동 권>
임란 당시 의병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쳐 경상도 병마절도사 겸 방어 사를 지낸 권응수 또한 안동 권씨.
권율 장군으로 대표되는 안동 권씨의 구국충정의 기백은 일제의 암흑기에 권종해·권준 등 숱한 항일투사를 배출했다.
권종해는 1906년 강원도에서 이중희 등과 함께 의병을 규합, 1908년 정선전투에서 8백여 명의 일본군을 사살한 의병장. 그후 만주로 망명, 의군 부의 유격 장으로 활약했다.
권준은 임시정부 내무부 차장·광복군 5지대 장 등을 지낸 항일독립투사.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기여했으며 육군소장으로 예편했다.
해방 후 안동 권씨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생겼다. 4명의 대학총장과 장관을 각각 배출했다는 것이다.
권중휘(문박·전 서울대 총장), 권이혁(의박·서울대 총장), 권오익(문박·전 성균관대 총장), 권상노(철박·전 동국대총장), 권영대(이박·전 서울대 문리대학장·원자력연구소 학술고문)씨 등 이 학계의 거목들.
또 권승렬(전 법무장관), 권중돈(전 국방장관·5선 의원), 권오병(법박·전 법무·문교장관), 권중동(전 노동부장관)씨 등 4명의 장관을 냈다.
안동 권씨는 총 20여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현직으로는 권정달(전 민정당 사무총장), 권익현(민정당 사무총장), 권영우(민정당 재정위원장)씨 등 3명.
권오기(전 동아일보 편집국장·동 상무이사·주필), 권혁승(전 한국일보 편집국장·동 편집이사), 권효섭(전 국회의원·MBC 전무이사)씨 등은 언론계에서 활약하는 인물들이다. 현재 안동 권씨 중앙화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권태흥, 권회준(재일 실업가)씨 등 이 재계의 얼굴들이다.

<지명인사> (종친회 제공·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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