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의 밤』은 밤을 마음자체로까지 끌어 올려|상상력 기발한『맨드라미』, 연결능력도 빼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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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운동선수의 절묘한 몸놀림, 그 한순간의 극적인 장면은 사람들을 사뭇 감동시킨다. 그처럼 뛰어난 선수의 기량도 뼈를 깎는 듯한 훈련과정이 앞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앞서 있는 것은, 경기 종목의 성격 자체를 뜻하는 규칙이리라. 규칙이 없고서는 선수도 심판도 관중도 경기장도 존재할 것 같지 않다. 시조의 3장 6구 12절도 바로 그같은 규칙이다.
규칙을 보다 자신의 일로 다루어 어떤 절묘한 상태나 순간을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입동의 밤」은 뛰어난 생각을 남다른 감각으로 처리한 시조이다.
특히『문틈에/물린 별빛이/아픈 발을 구른다』는 제l수 종장에서 남다른 감각을 볼 수 있고,『움츠리든 마음 밑에/산자락은 떨며 졸고』라는 제2수 중장은 이 시조 전체를 돋보이도록 한다.
방울 마음 자체로 끌어올릴 줄 아는 생각의 깊이가 이처럼 빼어난 순간을 지니도록 했으리라.
그 속에 이 작자의 심상의 밤이 온몸으로 존재한다고 본다.「맨드라미」도 상상력을 기발하게 펼치고자 애쓴 작품이다.
맨드라미라는 하나의 사물을 이렇게도 비유하고 저렇게도 비유하면서 그것들을 겹쳐서 짜는 연결 능력도 나타나 있다. 반드시 요구할 문제는 멋들어진 가락을 감고 풀어 낼 일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따뜻하면서도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생을 무척 긍정적으로 살피면서 그것을 절실하게 간직코자 하는 마음이 역력하게 나타나 있다. 그 마음이 얻은 빛나는 대목으로는『풀잎에 나직나직/속삭이는 하늘의 푸름』일 것 같고, 신바람 나는 리듬의 일로는『한 올 바람이 되어/흐르고 싶다, 이 초원』일 것 같다.「귀 품」은 과언 한국적인 정감을 귀 품으로 잘 이끌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많이는 잃었거나 잊혀진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재래 감각이자 그 귀 품이다. 작자는 그것을 새삼스럽도록 한 장면으로 불러 일으켜 향수 같은 것을 느끼도록 하고 있다. 맞추어진 율 감도 넉넉하다.
「조간」한 장의 심금을 통해서 손때 묻은 배달소년의 이력서를 느낀 작자의 마음씨는 고마움이 모닥불처럼 지펴지는 마음씨이다. 이점을 아우르고 있는 종장의 이미지는 밝고도 신선하다.
이밖에「월출」과「향수」와「산사」는 각각 아직 뭐라 할만 한 특징을 내세울 수가 없다. 단지 기초만은 제대로 잡힌 것 같다. 누구나 해온 목소리가 아닌, 생생한 자기들의 목소리가 있어야 하겠다.
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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