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부은행, 올해 백억 대 적자기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근 몇몇 금융관계 인사들이 점심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모 시중은행장이 다음과 같은 말을 토로한 적이 있다.『은행들은 올해가 단군이래 최악의 해가 됐습니다.』라고-.
그의 이 말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연말결산에 앞서 11월말 가 결산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각 은행들의 표정은 무척 우울하다. 즉 사채파동·금리인하·실명제 등 숨돌릴 사이 없이 밀어닥친 각종 경제사건과주요 조치들로 올 한해동안 금융계가 입은 인력 소모도 심했지만 그보다도 각 은행의 수지상태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책은행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중은행 중에서도 한일·상업은을 제외한 나머지은행들은 특별한 회계처리를 않는 한l백억∼1백50억 원 폭의 적자가 불가피하거나 혹은 세금을 내고 나면 배당을 거의 못할 정도로까지 흑자폭이 줄어들었다. 은행의 은행인 한국은행도 창립이래 처음으로 지난9월말현재 8백35억 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올 연말까지 적자폭은 모두 1천3백37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각 은행이 세금을 내고 대손충당금·퇴직금충당금 등 은행 내부에 쌓을 금액들을 충분히 쌓은 후 공금리 수준인 연8∼10%의 배당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익은 최소한 1백50억 원정도.
현재로선 이 같은「안정권」에 들어있는 은행은 상업은행· 한일은행 외환은행 등3개 은행정도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요즈음 각 은행들은 연말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보수적이라는 말을 들어온 은행들로서는 실로 오랜만의 부산한 움직임이다.
은행마다 영업점을 독려해 예금실적을 올리고 외환취급 실적도 늘리며 연체이자를 연말까지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는 터라 은행임원들은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고 전체 지점장들이 참석하는 회의도 전에 없이 잦다.
올해 각 은행의 영업실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각 은행의 내부경영이 다른 해에 비해 갑자기 부실해져서라기보다는 연초에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던 각종 사건·조치들이 한해동안 꼬리를 물면서 금융여건이 크게 달라짐에 따라 각 은행의 수지상태가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어느 시중은행 임원의 비유를 빌자면 올해 각 은행의 결산 재무제표는 그대로 올해 우리 경제의「축도」인 샘이다.
각 은행의 11월말 가 결산이 끝나봐야 그「축도」의 세세한 부분까지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그려지겠지만 대강의 도형을 결정지을 요소는 이미 윤곽이 잡혀있다.
우선 올해 각 은행의 수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역시6·28조치로 대미를 장식한 6번에 걸친 금리인하다.
대출이자는 즉각 따라 내려야되고 저축성 예금에 대해서는 계속 고율의 약정금리를 지불해야하니 은행으로선 역 마진으로 인해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년 6월말까지는 금리를 다시 올리지 않는 한 각 은행들은 역 마진을 계속 감수해야 한다.
6·28조치직후 재무부가 집계한 바로는 금리인하로 인해 5개 시중은행이 입은 손실액은 모두 7백75억원.1개 시은마다 1백20억∼1백80억 원씩의 손실을 안았고 지방은행까지 합하면 모두 9백38억 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으나 실제손실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고 시은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금리인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이 고리의 장기예금을 가장 많이 안고있던 서울신탁은행과 국민은행이다. 신탁은행의 경우는 2∼3년짜리 개발신탁이, 국민은행의 경우는 재형저축과 상호부금이 큰 부담이 된 것이다.
국민은행은 특히 영업활동이 제한돼있어 예금과 대출 이자의 차익이 영업수익의 거의 전부가 되므로 올해 대손충당금·퇴직충당금 등을 안 쌓고도 약 l백50억원 이상의 적자가 날 전망이고 서울신탁은행도 기존 회계규정을 충실히 지킨다면 적자폭이 1백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자 요즘 각 은행들은 단기간의 예대 역 마진을 줄이기 위해 예금코스트가 싼 요구불예금 비중을 더 늘리려는 기현상까지도 보이고 있다.
금리인하로 인한 은행들의 손실은 이것만이 아니다. 금리인하에 이어 실명제실시발표까지 겹치자 예금이 빠져나가 자금압박이 심해진 각 은행들은 급한 김에 콜시장에서 은행대출금리보다 훨씬 높은 13·8∼14%의 금리로, 혹은 한은으로부터 연12·5%의 금리 (B차입)로 비싼 차입금을 많이 가져다 썼다. 지난 9월말까지만 해도 한은으로부터의 5개 시중은행B한도 차입금액은 모두1천4백13억 원에 달했다.
한편 보통 시중은행의 영업수익 중 45∼50%는 신용장 개설 수수료·외무 매매차익 등 외환부문에서 올리는 것이 상례인데 지난4월 역시 기업 지원책의 하나로 달러당 매매차익을 종래의 2원90전에서 1원90전으로 줄이고 신용장개설수수료를 따지는 기준인 평균 우편일수도 15일에서13일로 줄인 것도 올해 은행수지를 나쁘게 만드는데 큰 몫을 차지했다.
각 은행들에 비하면 예금과 대출이 모두 1년 미만의 단기인 단자회사나 국내 금리체제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은 무풍지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은 국내지점들은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은행마다 12억∼15억 원씩의 이익을 올릴 전망이고 단자회사들도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지난해보다는 이익 폭이 다소 줄어들겠지만 적자걱정은 안 해도 되는 입장이다.
어쨌든 이 같은 상황에서 각 은행들의 연말 결산은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다. 결산과정에서 기왕에 충분히 쌓아놓았던 충당금의 일부를 다시 허물어 이익으로 잡는 등의 「회계기술」을 동원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유가증권을 미리 팔아 비록 이익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처분이익을 앞당겨 얻으면 적자는 충분히 막을 수 있기도 하다.<김수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