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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파병 결정 앞서 이런 점을 생각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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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6일 레바논 정부가 요청해 온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문제는 아직도 초보적인 탐색단계에 머물러 있다. 베이루트로부터의 파병요청이 정부당국에 의해 공식 확인된 지 10여 일이 지났지 정가 현 점에서 가부의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징후는 없다. 오히려 지금 단계에서 파병여부와 시기를 성급히 논하는 건 마치 모도 심기 전에 벼이삭을 세려 드는 것과 다룰 바 없다. 국군의 해외파병이 이뤄 지려면 외교·정치·경제적 상황과 이해득실 면에서 플러스 쪽이 커야 한다. 이러한 여러 고려 조건과 득실을 외교·경제적 측면에서 검토해 본다.

<외교적 측면>
현재 레바논의 현실은 추가로 파병 요청을 받은 한국 등 5개국 군대가 국제 평화 군으로서 레바논에 들어갈 수 있는 필요 충분 조건이 덜 돼 있다.
우선 현 단계에서 국제 평화 군이 과연 레바논의 어느 지역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지가 불투명한 현실이다.
레바논 국제 평화군의 역할은 대리 전쟁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레바논이 재건의 기틀을 다지는 기간으로 잡고 있는 향후 2∼3년간 주변의 이스라엘 및 시리아군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하는「경찰 군」이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국제법상으로도 국제 평화 군은 전쟁을 위한 군대가 아니며 정당방위를 위한 경우가 아니면 무기를 사용치 않는 문자 그대로 평화 군이다.
때문에 추가로 요청된 국제 평화 군은 레바논 남부에 깊숙이 포진하고 있는 4만∼7만 명의 이스라엘 군과 베카 계곡에 들어와 있는 3만 명의 시리아 군을 몰아내는 임무가 아니라, 이들 군대와 레바논 영토 안의 PLO군 등의 모든 외국군이 완전 철수한 뒤 그 공백을 메우는 임무를 져야 한다.
따라서 이들 외국 군대의 철수 여부가 국제평화군의 레바논 추가 파병의 관건이다.
현재「하비브」특사와「드레이피」미 국무성 차관보가 이스라엘·시리아 등 관련 당사국과 철수 교섭을 진행 중이나 그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이러한 기본건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파병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요청 받은 각 국의 국익과 형편을 신중히 고려한 후의 일이다.
현재 파병요청을 받은 5개국 중 영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고려해 파병요청에는 기본적으로 응하되 이미 포클랜드·키프로스·벨리즈 등에 군대를 보내 놓고 있는 만큼 소수병력의 파병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스웨덴은 유엔의 결의가 아닌 국제 평화군의 파견을 헌법의 계약이 있다는 부정적 태도다.
네덜란드는 하원에서 파병을 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벨기에는 파병은 가능하나 엄청난 경비 때문에 자신이 없다는 태도다.
이들 4개국에 비해 한국의 외교·재정·경제적 입장이 더 좋을 턱은 없다.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의 긍정적 요인으로 △국제 평화 군으로서의 한국의 이미지 선양 △중동평화에 대한기여 및 이에 따른 대 중동 진출 확대 가능성 △레바논 평화정착의 궁극적 후견인인 미국과의 돈독한 유대 재 다짐 및 이에 따른 대미 연안의 해결 가능성 증대 등 이 꼽힌다.
중동 지역의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모로코. 아프리카지역의 나이지리아·세네갈 등 이미 레바논에 유엔 주둔군을 보내 놓고 있는 친 서방 아프리카 비동맹 국가 및 아시아와 유럽의 친 서방국가들이 한국군의 레바논파견에 호의적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밀착 이미지에서 을 다른 제3세계 권의 반발 △북괴의 역공세 △주둔지역에서의 무력충돌 가능성 △출혈 적인 주둔 경비지출 등의 부정적 요소가 현재로선 더 돋보인다.
특히 난마와 같이 엉켜 있는 레바논 국내 사정과 중동 등 제3세계 권과의 관계를 보면 정부가 우려하는 이상의 외교적 손실을 가져올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75년의 리마 비동맹회의에서 남북한이 가입을 추진했다가 우리는 베트콩 대표「빈」여인이 한국의 월남 참전을「미국의 용병」으로 몰아붙이는 통에 패배의 쓴잔을 마신 일이 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와신상담해 다져 놓은 대제3세계 외교가 레바논 파병과 관련, 이해가 상충되는 시리아나 리비아 등과 부딪쳐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은 피해야 할 처지다.
더구나 국제적으로 1개 대대(7백 명 정도) 파병경비가 매달 4백만 달러 정도로 예상되고 있는데 2, 3년간 2천명내의의 파병 경비는 우리 재정형편으로 보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부담에 대해 국민을 어떤. 논리로 납득시키느냐 도 보통 일은 아니다.
실제로 정부는 이러한 여러 점을 그동안 예의 검토, 레바논과 그 후견 국인 미국정부에 중간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의 입장에도 불구하고「레바논의 안정=중동평화」라는 대명제로 부심하고 있는 레바논과 미국 정부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파병 요청계획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얼마만한 강도로 우리에게 제시되느냐가 중요한 변수다.
현재까지 미국은 국무성에서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을 희망한다는 의사표시를 해 오는 선에 머무르고 있는데「하비브」특사의 레바논주둔 외 군 철수협상 진전에 따라 보다 구체적인 의사표시를 해 올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에도 파병문제는 우리의 독자적인 정세, 득실판단에 의해 신중히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유 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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