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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동구권입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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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68년7월「브레즈네프」는 헝가리공산당수「야노시·카다르」와 만난 자리에서 이른바「브레즈네프·독트린」을 예고했다.
「카다르」당수가 56년 헝가리 의거 때 소련군이 진압해준 것을 치하하자「브레즈네프」는『외국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국제공산주의에 대한 위험이 있을 경우 소련은 무관심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몇 주일 뒤인 8월21일 소련·폴란드·동독·헝가리·불가리아 등 바르샤바조약 군 2만 명은「알렉산드르·두브체크」의 주도로 꽃을 피워가던「프라하의 봄」을 분쇄하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함으로써 소련 권「형제국가」의 주권은 사회주의진영전체의 이해관계에 종속된「제한된 주권」임을 실증했다.
이 같은 소련의 정책은 79년12월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재확인됐다.
오늘날「브레즈네프」가 최소한 동구위성국가의「경영」문제에서만은 그의 후계자들에게 비교적 큰 빚을 지지 않고 떠났다는 말을 듣는 것 은 바로 이「브레즈네프·독트린」덕분이다.
64년10월「브레즈네프」가「흐루시초프」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올랐을 때만 해도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최악의 지경에 놓여 있었다. 이미「스탈린」시대에 유고슬라비아가 이탈했고 「흐루시초프」때 와서는 모든 형제 국들의「원심분리운동」이 더욱 가속화했다.
크렘린의 꾸준한 노력에도 유고슬라비아 정부를 다시 소련의 연합 권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알바니아도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루마니아는 여전히 형제 국으로 남아있었지만 주권존중을 외쳐대고 있었다.
그러나「브레즈네프」시대에 와서 소련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의 질서를 웬만큼 회복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사태가 여전히 가변적이긴 해도 폴란드는 체코슬로바키아·동독과 함께 소련의 충실한 추종국으로 남아있고 독자노선을 표방하는 유고슬라비아나 루마니아도 예전만큼은 자주성을 강조하지 않고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브레즈네프·독트린」에 의한 동구위성국관리강화의 결과다.
「브레즈네프」가 가고「유리·안드로포프」가 들어선 이제 이 독트린이 계속 추구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당분간은 대 동구정책에 큰 변화가 없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브레즈네프」사망과「안드로포프」승계에 대한 동구공산국가들의 반응으로 봐도 당장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소련과 가장 밀착돼있는 불가리아와 동독은 물론 프라하의 봄이 짓밟혔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지도자들도「브레즈네프」의 업적을 찬양하고「안드로포프」취임을 환영했다.
특히 경제개혁추진을 위한 충분한「행동의 자유」를 소련당국으로부터 양해 받아 온 헝가리는「안드로프프」가 계속 헝가리의 현실에 호의를 갖고 대해주기를 희망했다. 부다폐스트의 신문들은「브레즈네프」가지난수년간 여러 차례나 헝가리의 경제개혁을 본보기로 들었음을 상기시키고 53∼57년 헝가리주재대사를 지낸「안드로포프」가 그의 후계자가 된데 큰 기대를 표시했다.
「브레즈네프」이후를 끌어갈「안드로포프」에 대한 엇갈린 평가도 소련의 대 동구정책의 추이를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다.
「안드로포프」는 그의 선임자들과 닮은 곳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자유주의적 인물」 「전형적인 경찰」「그림자뿐인 인간」이라는 등의 갖가지 엇갈린 평을 듣고있다.「안드로포프」는 헝가리의거당시자유화운동에 호의적이었으며 지난 수년간 헝가리의 경제개혁운동을 지지해온 대표적인 소련지도자의 한사람이었다고「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 헝가리의거를 분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KGB책임자로 반체제운동을 철저히 억압했으므로 대 동구정책도 기대할게 없다는「부정적」평가를 받고있기도 하다.
그는 소련이 헝가리의거를 유혈진압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체코지도자들에게 소 군이 철수태세에 있다고 거짓통보 한 것으로 보도됐었다.
또 일부에선 그가 이지적인 인물로 오랫동안 당 중앙위 사회주의국가 관리책임자를 지내 동구를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동구공산국가들과의 관계를 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국가별현실에 맞춰 조심스럽게 추구해갈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관측통들은 내달 프라하에서 열릴 예정인 바르샤바조약 7개국 정상회담에서 소련의 동구정책의 나아갈 길이 시사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안드로포프」의 등장으로 소련-동구관계가 개선될 조짐은 당장은 없다. 이는「브레즈네프」시대가 동구공산국가들에 대한 관리강화 기간이었다면「안드로포프」시대는 당분간이를 보다 공고히 하는 기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폴란드사태가 소련의 새 지도부의 대 동구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척도가 될 것만은 틀림없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13일 자유노조 지도자「바웬사」를 연금11개월만에 석방했지만 폴란드 국민의 입장에서는「바웬사」의 석방이 결정적 의미를 갖지 못하며 소련이나 폴란드당국으로서도 정상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노동자들의 시위와 파업사태는 일단 가셨으나 최대문제인 경제난 타개를 위해선 국민이 열심히 일해줘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바웬사」의 석방과 내년6월로 결정된 교황방문 등도 새로운 변수다.
결국「브레즈네프」는 후계자에게 제국경영에 있어서 한가지 난제를 유산으로 남겨놓은 셈이다.【파리=주원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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