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서동만을 아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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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란 자리는 직급(차관급 정무직)에 비해 그 권한이 막강하다. 국정원 예산과 조직관리 등 내부 살림살이의 총책이다.

여기에 정부 유관 부문 정보기관의 정보를 취합하고 관련 예산을 기획 조정하는 권한까지 갖는다. 예산을 들여다 보니 국정원 관련 업무를 소상히 꿸 수 있다.

가위 국정원 내부의 실세 중 실세다. 지금 이 자리에 친북 좌파 세력으로 분류되는 서동만 교수가 임명됐다. 국정원이 어떻게 개혁되든 우리 실정에서 대북 정보 전담 정보기관임은 변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관의 핵심에 친북 좌파가 앉아 있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까지 가세한 작금의 논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 북한사회주의 경직화 과정 연구

서동만은 진짜 친북 좌파인가. 한 두차례 그를 만나본 인상으로 답을 낼 수 없어 나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포함한 각종 기고문과 발언록을 점검해 봤다. 결론은 "친북 좌파가 아니다"였다.

우선 그의 도쿄(東京)대 박사학위 논문 '북조선에 있어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1945~61)'을 보자. 6백50쪽에 달하는 방대한 이 논문은, 북한 사회주의가 군사적 색채가 강한 1인체제의 '국가사회주의'라는 기본 시각에서 출발한다.

김일성 중심의 만주파가 5단계를 거쳐 노동당 인민군을 장악하고 공업.농업 분야에서 국가사회주의를 정착하는 과정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58년에서 61년 시기에 지방 단위까지 '당=국가체제'가 전 사회를 지배하는 1인체제의 국가사회주로 완성되면서 북한 사회주의는 최소한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경직된 사회로 변하는 과정을 걸어 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김일성 중심의 주체노선 확립이 북한 역사의 발전을 가져온 게 아니라 유일체제가 형성되면서 역동성이 떨어지고 낙후된 사회주의 국가로 전락했다고 평가한다.

그의 다른 논문에선 북한이 과거 역사 서술을 철저하게 김일성 한 사람 중심으로 한정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에서 과거를 되돌아 보고 과거와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축소했다고 개탄한다. 그 대표적 사례로 단군릉을 꼽는다.

이런 그가 친북 좌파인가. 북한이 개혁개방 노선으로 나가기 위해선 최소한의 논쟁과 상호비판이 가능한 역동의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개혁개방론자다. 남북간 화해협력을 주장하는 햇볕론자다. 북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인도적 지원과 경제 지원을 해야 한다는 DJ식 햇볕론자다.

2002년 서해교전 당시 그는 "원인 제공자가 북측이긴 하지만 남북 당국이 이번 사태가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을 확인하고 남북 화해와 협력을 지켜가는 방향으로 서로 입장을 설명하고 해석하자"고 했다 (한국일보 2002년 6월 30일).

당시 우리 사회 분위기로선 이런 식 발언이 그를 친북 좌파로 모는 단서가 됐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진보 성향의 학자다. 6.15 공동선언과 주적론은 모순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적 표기가 없다고 해서 현존하는 북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단서를 단다. 그는 연방제 통일론 공론화는 찬성하지만 1민족 1국가 방식의 연방제는 반대한다.

우리 사회의 관행상 친북 좌파란 '빨갱이'다. 빨갱이의 기본조건은 6.25전쟁과 주체사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서동만은 6.25를 '김일성의 참담하게 실패한 무력통일'로 규정하고 주체사상을 종파사건을 계기로 권력 집중화를 향한 개인우상화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그가 빨갱이인가. 국정원장 기조실장을 몽땅 진보적 인사로 내밀고 정치적 타협을 하지 않은 대통령 인사 방식은 잘못됐다.

*** 친북좌파 매도 누가 책임지나

또 그가 친북 좌파가 아니라 해서 기조실장에 적임자라는 주장도 아니다. 한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을 근거없이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그 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토가 문제라는 것이다.

화가 서세옥이 설치미술가인 아들에게 이런 고언을 들려준다. "개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들이 따라 짖는다. 첫번째 개는 뭘 보고 짖었겠지만 다른 개들은 '대상'을 보지도 못한 채 소리만 듣고 짖는 거야. 인생과 예술도 마찬가지야. 어떤 경우든 소리만 듣고 따라 짖는 건 곤란해"(조선일보 4월 30일 '사람들'난).

'서동만은 빨갱이'라고 누군가 잘못 짖으니 너도 나도 짖다가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우리 사회의 무분별이 이렇게 개판인가.

권영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