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과 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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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예산을 긴축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공공요금의 인상을 억제하는 일을 동시적으로 달성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둘은 서로가 이율배반적 성향을 갖고있어 재정의 긴축이 감화될수록 공공요금의 인상압박이 커지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재정의 고충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공공요금의 대폭인상을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재정긴축의 배경이 되고있는 국내경제여건 때문이다.
우선 3년간 계속되어온 불황으로 정부·민간 할 것 없이 회복의 잠재력을 거의 잃고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작금의 불황심도는 올해 세수결함에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듯이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정부도 이런 사정 때문에 내년 예산을 초유의 긴축예산으로 편성해놓고도 5천억 원이 넘는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민간의 여력이 극도로 위축된 현실을 고려, 정부가 솔선해서 절약과 긴축을 수범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이는 정부기관만의 절약뿐만 아니라 광범한 의미의 정부부문에서 합리화와 경영개선을 시범하자는 뜻이라 하겠다. 그런데도 유독 정부기업이 관장하는 공공요금만은 이런 경제적 합의를 도외시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 중요한 관심은 물가와의 관련에서 찾아진다. 불황과 경기침체의 영향이 크기는 하지만 임금·이자율 등 중요한 요소비용이 한자리 숫자의 물가안정을 위해 무리하게 억제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비록 올해물가가 예상 밖의 안정으로 5%이내에서 억제될 수 있다해도 반드시 내년 물가를 장담하기 어려움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내년에도 5%선의 억제를 기대하고있는 정부가 임금통제와 총수요관리를 강화하려는 것도 현재의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이다. 정부 기대대로 국내경기의 회복이 내년 중에 가능하다면 엄청나게 불어난 통화가 그 어느 때 보다 큰 장애요인이 될 것은 자명하다. 민간의 여력이 회복된다해도 그 동안의 장기불황에 따른 경영적자의 개선욕구가 가격인상 압력으로 나타날 공산이 커질 것이다.
대규모의 재정 적자도 인플레요인으로 잠재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한다면 내년물가는 해외요인보다 대내요인에 크게 좌우될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일련의 공공요금을 계획대로 대폭 올리게되면 정책의 일관성도 무너지고 또 다른 경제교란요인을 정부가 앞장서서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을 우려한다. 특히 공공요금은 정부기업의 부실을 반영하여 언제나 다른 물가를 선도해온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내년의 대폭인상은 온당한 정책이라 보기 어렵다.
특히 내년예산은 예년과는 달리 새로운 편성기준에서 출발하려는 고역을 치르고 편성되었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대폭적 인기도·체신 등 공공요금인상이 계획되고 있다면 그같은 편성과정의 고역은 한낱 도노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공요금은 철저한 장기경영 개선계획을 토대로 새로운 시각에서 재검토되어야하되 그 시기의 선정은 가급적 경기회복이 기대되는 내년 후반기 이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요금에 관한한 언제나 중요한 것은 안이한 수익자부담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영개선이 선결과제이며 국민이 납득하는 시기와 요금조정의 기준이 먼저 연구되어야할 과제임을 거듭 지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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