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집값 잡기 위한 학군조정은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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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 강남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울시 학군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학군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우리의 현실이 여간 안쓰럽지 않다. 정부와 여당이 연일 갖가지 부동산 대책을 검토하고 있지만 뚜렷한 묘책이 없는 것 같다. 강남 아파트값 상승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대책이 궁하기에 교육 정책까지 동원하려 하는가. 오죽 답답했으면 학군을 조정해서라도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할까. 이해할 못할 바는 아니지만 교육 정책이 교육 논리에 의해 논의되지 않고 경제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

김진표 교육부총리와 서울시교육청이 생각하는 학군 조정 방안을 보면 강남 학교가 우수하고 학생들이 이들 학교를 선호한다는 전제 아래 강남 학교 진학 기회를 강남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도 개방해 고교를 평형화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광역 학군과 공동 학군이 거론되고 있다. 강남 학군을 광역 학군으로 조정하는 경우 강남 학군에 인근의 강동과 동작 학군을 포함시켜 광역화하는 방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공동 학군으로 조정하는 경우 강남 거주 학생에게 일정 비율을 배정하고 강북 등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 지원 기회를 주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방안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들이 밀집한 강남 학교의 진학 기회를 타지역 학생들에게 개방하여 교육 불평등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을 완화하고 지역 간 학교 교육의 불평등을 평형화해 강남 부동산 문제까지 풀어 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들 방안 모두 타지역 학생들이 강남 지역 학교에 배정됨에 따라 타지역 학생들이 강남에 들어온 만큼 강남 지역 학생들은 타지역 학교에 배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인근 학교를 놔두고 굳이 선호하지도 않는 원거리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문제와 원거리 학교에 배정된 학부모들의 불만이 폭증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학군 조정 문제를 논의할 때 강남 지역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높다면 그 원인이 강남 지역의 학교 요인에 기인한 문제인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학군 조정에서 모든 학부모들이 강남 지역 학교를 선호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강남 지역 학교는 좋은 학교이고 이 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학력이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실제로 강남 지역 학생들은 다른 지역 학생들보다 학업 성적도 높고 명문대학 진학률도 높다. 이 같은 높은 교육 성취의 요인들이 학생들의 강남 유입을 증가시켜 부동산 급등 현상을 낳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강남 지역 학교의 교원이나 학교 시설 등의 교육 여건이 다른 지역 학교들에 비해 대단히 우수한 것은 아니다. 지역 간 학력 격차를 초래하는 요인은 학교 요인보다는 강남 학부모들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학생들의 학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좋은 학교로 인식되는 학교 분위기도 결국 학부모들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지역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학교를 타지역 학생들에게 개방하는 것이 지역 간 교육 평형화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문이다.

강남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학생들이 이용하는 학원이 많고 청소년들이 이용할 만한 문화시설이 많다. 도로 면적이 넓고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기도 용이해 생활의 편의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따라서 강남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학군의 조정 차원을 넘어 학교의 교육 조건을 평준화하는 노력과 함께 부동산 가격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의 편의성을 모든 지역에 균형적으로 증대시키는 정책이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김영철 한국교육개발원 선임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