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2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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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는 차츰 마도로스와 친해져서 연근이 끝나고 아홉 시 이후에는 구로동 시장 부근의 선술집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날 번 일당은 물론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형편이 좀 나아서 소주 값을 주로 내는 편이었다. 내 사수인 숙련공 청년은 그야말로 짠돌이었다. 우리가 공단 구내를 빠져나와 구로동 사거리 쪽으로 내려오면 그는 곧잘 얘기를 걸며 따라오다가도 술집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뒤통수를 긁으며 슬슬 꽁무니를 빼었다. 내가 저 친구 술을 전혀 못해서 그러냐고 물으니 마도로스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일요일에 쟤 집에 가봐 빈 술병이 일렬로 서 있더라구.

-그럼 왜 저렇게 빼는 거야?

-지가 겁나니까. 한번 얻어먹으면 다음번에 사야 하잖아. 일 끝나구 술 먹기 시작하면 일주일 내내 한이 없지.

-자네는 그럼 왜 날마다 날 꼬시는데?

-쳇, 이젠 나두 기합이 빠졌어. 철없을 땐 저렇게 결심하구 살아보는 때가 있지.

술자리에서 그가 한번 자기 얘기를 잠깐 비쳤다. 그는 군대 가기 전부터 이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제대하고는 배를 타고 싶어 부산이며 인천이며 찾아다녔지만 선원수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배를 탄다는 녀석들마다 해군 출신은 왜 그렇게 많던지, 그런데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지방 도시에서 작은 자전거포를 하던 아버지가 화물 트럭에 치여 다리를 못 쓰고 자리에 눕게 되었다. 어떻게든 장남인 자기가 취직해서 다달이 약값이라도 보태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다시 회사를 찾아 들어왔다. 처음부터 진작 그랬으면 시간 낭비도 안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은 사무실로 올라간 부장이라는 자가 입사할 때에 반장이었는데 처음부터 서로 안 좋았다. 군대 가기 직전에 회식 자리에서 술취한 척하고 그를 호되게 패준 적이 있었다. 본사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더구나 근무 시작한 지 두 해 만에 그는 쟁의 주동한 다섯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본보기로 두 사람이 회사를 나가고 그들은 공단으로 쫓겨나왔다. 그가 말했다.

-너무 서둘렀고, 동조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

친목회에 대하여 얘기한 것이 바로 그 친구였다. 일터에서 만나지만 서로 일상생활도 잘 모르는 처지에 노조 얘기를 꺼내면 모두 입 다물고 피해 버린다는 것이다. 친목회 모으기도 쉽지는 않다고 했다. 모임을 만들려는 사람은 보통 때에 일터에서 공원들 사이에 성실하다는 평이 돌아야 한다고. 건달 같은 친구가 나서면 아무도 믿지 않고 호응도 없다고. 그리고 일 솜씨도 좋아야 한다고. 취미에 따라서 음악, 낚시, 등산, 독서, 운동 다 되지만 역시 남자 공원들과 여공들의 모임은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그래도 일요일에는 쉬게 되지만 욕심을 내는 작업장에서는 휴일과 일요일도 반납하고 야근과 연근을 쉬지 않고 강행하는 곳도 많았다고 한다. 요새는 차츰 교회나 종교단체의 항의가 많고 기업주나 간부들도 교인이 많아져서 일요일은 대체로 쉬게 한단다. 주위를 살펴보면 여공들은 교회 나가는 모임이나 독서 음악감상 등이 많고 남자 공원들은 등산, 낚시, 축구, 배구 등이란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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