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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레바논에 파견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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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다목적 평화유지군의 증강책으로 한국에도 군대파견을 요청했다는 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가 공식요청을 받은바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것이 실현될 경우 한국과 중동관계는 하나의 전환기를 맞게된다.
레바논의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현재 미국·프랑스·이탈리아 3개국으로 구성돼있으며 「아민·제마옐」대통령은 최근 이 평화군의 규모를 4천명에서 3만명까지 증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군 파병요청을 받은 영국 등은 파병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우리 외무부도 파병요청이 올 경우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있다.
지난달 말 미국·프랑스·이탈리아 등 다국적 평화유지군 파견국가들을 순방한 「제마옐」레바논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있은 「레이건」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처음으로 레바논주둔 평화유지군 증원을 요청했다.
당시 「캐스퍼·와인버거」 미 국방장관도 레바논주둔 평화유지군의 증강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했으나 중동평화문제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1천 2백명 수준인 미 해병대의 숫자는 더 이상 늘릴 수 없다고 못박았다.
「와인버거」장관은 이에 따라 앞으로 다국적 평화유지군에 추가로 참여하게될 병력은 이미 두 차례나 파병을 한바있는 미·불·이 등 3개국을 제외한 제3국가들이 될 것이라고 시사했으며 이들 국가가운데는 이번에 레바논정부가 파병을 공식 요청한 한국·영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벨기에·스웨덴 등 6개 국외에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모로코 등 아랍국가와 그리스·캐나다·인도 등도 거론됐었다.
미국은 지난 8월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철수에 따른 중동평화협상과정에서 「필립·하비브」 미 중동특사의 제안으로 1차 다국적 평화유지군 2천 1백여 명(미국·프랑스 각 8백명, 이탈리아 5백 30명)을 파견한데 이어 9월 16∼18일의 샤틸라, 사브라 두 팔레스타인 난민촌 대량학살사건을 계기로 철수 10일만인 9월 21일 2차 평화유지군 파견이 이루어졌다.
레바논주둔 평화유지군의 주임무는 치안유지와 이스라엘·시리아 등 레바논주둔 외국군 철수에 관련된 감시활동. 이 밖에 기독교·회교사병집단들에 의한 각종 테러 등을 방지하기 위한 수색 및 무기회수, PLO잔여세력철수감시 등도 겸해 레바논-이스라엘 국경지대에 지난 4년간 주둔해온 11개국 유엔평화군(UNIFIL)의 국경지대 완충역할과는 별개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레바논이 자체정규군을 2만 3천 7백 명이나 보유하고있고 여기에 다국적 평화유지군이 4천명이나 되는데도 추가 병력지원 요청이 나온 것은 정규군의 질적 수준이 워낙 형편 없는데다 레바논 국내에서 준동 하고 있는 각종 무력집단의 세력이 이를 크게 능가하여 자체병력이나 4천명의 평화유지군만으로는 치안유지 조차 제대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75,76년 레바논내전으로 와해됐던 정규군은 77년 이후 재편성됐으나 외국의 무기 및 군사비 지원으로 겨우 유지하는 실정. 베이루트의 서방관측통들은 레바논 정규군이 『화력이나 지휘장교가 모두 형편 없는데다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말뿐인 군대』라고 혹평할 정도다.
이처럼 정규군이나 경찰력 등이 미약한데 반해 좌·우익 종교단체 및 기타소수 세력들의 무력은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어서 정규군 역할을 대신 떠 맡게된 평화유지군은 항상 레바논집권당 반대세력이나 평화유지군의 정책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극렬분자들의 공격이나 테러 등에 시달려야하는 위험도 안고있다.
실제로 레바논 좌익민병대가 지난 9월 12일 PLO철수감시임무를 마치고 귀국을 준비중이던 프랑스군 파견대를 습격, 20t의 탄약과 군 트럭 4대 등을 파괴했으며 이 전투에서 3명의 사망자와 44명의 부상자가 생겼고 지난달 말에는 미 해병대 사병 1명이 테러분자들에 의해 베이루트시내에서 피살된 적도 있다. 한국의 레바논 파병문제는 지난 10월말 「아민·제마옐」대통령의 방미 때 협의됐을 가능성이 크다. 「제마옐」대통령은 미국 외에 프랑스·이탈리아 등 평화군 파병국가들에 대해서도 군대를 증파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레바논 파병이 이뤄진다면 이는 월남에 이어 두 번째 해외파병이 된다.
현재 레바논은 1백 50억 달러 규모의 복구사업을 미국 등의 경제지원아래 실시할 예정인데 복구사업에 대한 한국진출가능성과 연관해 생각해본다면 파병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의 「드레이퍼」 중동특사는 레바논의 전후복구사업과 군대증강을 비롯한 주민강화정책을 돕기 위해 레바논 정부당국과 협의하고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군의 파병문제도 구체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만한 까닭은 몇 가지 있다. 첫째, 미국은 레바논이 요청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1만 명 규모의 병력을 증파할 처지가 못된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반발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평화유지군의 증원으로 이스라엘 군대가 조기 철수하게되는걸 바라지 않는다.
다음으로 미국은 중동주둔병력을 늘림으로써 소련을 자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 밖에도 만약 중동처럼 복잡하게 얽힌 분쟁지역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할 경우 평화중재자로서가 아니라 분쟁당사자의 하나로 다툼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미국은 고려할 것이다.
한국군 파병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한국과 「제마옐」정부와의 우호적인 관계도 들 수 있다. 「아민·제마옐」대통령의 부친 「피에르·제마옐」은 73년 박 대통령 취임식전에 참석한 적이 있고 「제마옐」대통령 자신도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9월 23일 그의 대통령 취임식전에 참석한 문창화 주 레바논대사에게 한국관계유지를 바란다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었다. 한국군 파병의 관건은 비용문제다.
현재 레바논 주둔 평화유지군은 파견국가 자신이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며 추가로 참여하게 될 국가의 경우에도 자비파견원칙이 적용될 전망이다.
이미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미·불·이탈리아는 물론 새로 파견요청을 받고있는 영국 등 유럽 5개국은 선진국들이기 때문에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와는 달리 개발도상국인 우리나라가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평화유지군을 보내야 되느냐 에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이런 문제는 한·레바논 양국 외에 한미간의 협의를 통해 해결돼야하는데 한국의 안보에 손상이 없도록 하는 다른 방식의 지원과 보장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레바논에 파병할 경우 염려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평화유지군으로서 자칫 분쟁에 휘말릴 경우 회교국가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한국이 국제분쟁지역의 평화유지군으로 파병요청을 받을 만큼 국제사회에서의 지위가 향상됐다는 사실이다. 또 파병은 앞서 지적한대로 우리 건설업계의 레바논 복구사업참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홍함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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