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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아즈텍 못생겨서 실패 … 디자인 10년 앞서야 성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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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18면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 모터쇼에서 독일 자동차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인 수퍼 스포츠카 AMG-GT. [중앙포토]

‘쏘나타 쇼크’. 지난달 19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만난 도요타 캠리 부수석 엔지니어 나카오 도시히로(仲保俊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파격적으로 바뀐 이번 캠리 디자인이 현대 쏘나타를 의식한 것인지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그의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그러나 YF쏘나타 디자인이 도요타 내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은 확실히 밝혔다.

점점 치열해지는 자동차 디자인 전쟁

그는 “쏘나타 쇼크는 2009년 YF 출시 직후 도요타 개발팀 사이에서 회자된 신조어였다. 굉장히 과감하고 앞선 디자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YF 다음 세대 쏘나타의 디자인과 지금의 캠리 디자인은 정확히 반대로 뒤집혔다. 쏘나타는 LF로 진화하면서 돌연 점잖아졌다. 반면 캠리는 큰 폭의 부분변경을 통해 날렵하고 매끈한 모습으로 젊어졌다. 자동차 업계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한 차종이 디자인으로 크게 관심을 끌면 동급 라이벌이 영향을 받는다. 메르세데스-벤츠가 2004년 선보인 CLS가 좋은 예다. 문 넷 달린 세단이지만 스포츠카처럼 늘씬한 지붕을 씌웠다. 벤츠는 ‘4도어 쿠페’란 신조어를 앞세웠다. 원래 쿠페는 문을 두 개만 달아 멋을 낸 차를 뜻한다. CLS 이후 비슷한 차종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 자동차 업체가 위험을 무릅쓰면서 파격적인 디자인을 도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령 정체된 판매에 활력을 불어넣거나 좀 더 젊은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이런 경우 한 차종뿐 아니라 브랜드 전체 제품군의 디자인을 갈아엎기도 한다. 최근 스핀들(spindle·방추체) 그릴을 씌워 과격하고 스포티한 이미지로 거듭난 렉서스가 좋은 예다.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은 “지금까지는 예고편이다. 향후 렉서스의 디자인은 보다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생김새가 차의 운명을 결정
디자인에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는 건 디자인이 차종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주요 자동차 메이커의 기술 수준은 엇비슷해졌다. 최고급 프리미엄급을 제외하고는 성능상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 디자인이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신차를 살 때 크게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의 하나가 디자인이다. 지난해 자동차 전문 리서치 회사 마케팅인사이트는 ‘신차 최종 구매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인’을 분석해 발표했다. 이 조사(복수 응답)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외관과 스타일(68%), 가격과 구입 조건(51%), 모델의 명성·평판(49%), 품질(48%), 안정성(45%)의 순서로 고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GM은 디자인을 무시했다가 자동차 역사상 가장 쓴잔을 마신 적이 있다. 2001년 GM 계열의 폰티액은 아즈텍을 출시했다. 시작은 야심 찼다. 폰티액은 “지구상에서 가장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차”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실제로 시대를 앞선 차였다. 미니밴과 SUV의 중간 형태를 띠면서 스포티한 이미지를 갖춘 차를 지향했다. 크로스오버 유틸리티차량(CUV)의 선구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아즈텍은 실패했다. 그것도 아주 참혹하게. 이유는 단 하나였다. 소비자들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못생겼다.” 지금은 중국에 밀렸지만 당시 미국은 전 세계 최대의 단일 자동차 시장이었다. 아무리 못 팔아도 1년에 3만 대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즈텍은 6000대도 안 팔렸다. GM은 애당초 연간 10만 대 판매를 예상했다. 2005년 아즈텍은 수많은 기록을 남기고 단종의 비운을 맞았다. 돈도 많이 날렸다. 보통 신차 한 대를 개발하는데 3000억~5000억원이 든다. 아즈텍의 경우 수억 달러를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치열한 내부 경쟁 통해 완성
반면에 BMW는 디자인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다. 1980년대 말 BMW는 최대 시장 미국에서 고전 중이었다. 언론은 BMW의 보수적 디자인을 꼬집었다. 차의 디자인이 비슷해 변화가 없었다.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92년 BMW는 피아트 출신의 미국인 크리스 뱅글을 디자인 총괄로 뽑았다. 그의 손을 거친 BMW는 늘 논쟁의 불씨가 됐다.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관심과 판매가 비례했다. BMW는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

업체들이 소비자의 마음을 훔칠 디자인을 찾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건 당연하다. 주요 시장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두는 이유다. 현대차는 경기도 남양만 연구소를 비롯해 미국과 독일, 인도, 중국, 일본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두고 있다. 서울 양재동 본사엔 선행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디자이너는 국내 350여 명, 해외 150여 명으로 총 500명 이상이다.

스케치에서 양산 디자인으로 확정되기까지 보통 3년 정도 걸린다. 양산차 디자인은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쳐 태어난다. 먼저 각 디자인 스튜디오 내에서 하나의 안으로 압축한다. 이후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와 경합을 벌인다. 최종작을 선정한 뒤 나머지 안의 장점을 섞기도 한다. 기아차의 경우 K5와 스포티지 R은 독일의, K9은 남양만의 작품이다. 도요타 캠리 부수석 엔지니어 나카오 도시히로는 “캠리 최신 버전의 디자인은 미국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유능한 디자이너들이 각 업체의 디자인을 주도한다. 현대·기아차 디자인의 사령탑은 독일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이다. 폴크스바겐그룹의 디자인 총괄은 이탈리아 출신의 발터 드 실바다. BMW 디자인의 총지휘자는 네덜란드인인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 메르세데스-벤츠 미국 선행디자인 스튜디오의 센터장은 한국인 이일환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이다. 신차 개발 기간과 제품 수명을 감안하면 길게는 10년 앞을 내다본다. 그만큼 변수도 많다. 따라서 각 업체는 눈치를 살피되 저만의 전략을 짠다. 효율 또는 안전 등 한 방향으로 수렴되는 기술과 사뭇 다르다. 최근 자동차 업계는 독특한 표정 만들기에 열심이다. 전문용어로 ‘패밀리 룩(Family look)’이라고 한다.

같은 브랜드 차종은 서로 얼굴 닮아가
지난 9월 프랑스 파리 모터쇼에서 만난 랜드로버 디자인 총괄 겸 최고창조책임자(CCO) 제리 맥거번은 “한 브랜드의 차종이 서로의 얼굴을 닮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랜드로버 라인업은 하나의 가족과 같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어떤 브랜드의 SUV와도 닮지 않았다. 나아가 랜드로버 내의 각 차종은 모두 독특한 차별성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자동차 디자인의 유행은 돌고 돈다. 90년대엔 매끈하게 둥글린 디자인이 인기였다. 반면 최근엔 부위별로 날을 세운 디자인이 대세다. 경험과 지식의 영향이다. 과거엔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이제 공기의 흐름을 최대한 이로운 쪽으로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안전 규제도 양산차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다. 요즘 차를 보면 콧날 부위가 수직으로 뚝 떨어진 경우가 많다. 보행자와 부딪쳤을 때 상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묘안이다.

김기범 객원기자(로드테스트 편집장) ceo@roadte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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