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BOX] '정보팀 아지트' 여의도, 한때 80개 팀 활동하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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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찌라시’는 일본어로 ‘뿌리다’를 뜻하는 ‘지라시(散らし)’를 강하게 발음한 데서 유래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용어다. 사전에서는 ‘지라시’를 ‘선전(宣傳)을 위해 만든 종이 쪽지’로, ‘낱장 광고’나 ‘선전지’로 순화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찌라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정부가 수출 진흥정책을 펼치며 기업들을 독려하던 1970년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종합상사 직원들이 비공식 모임을 열어 각자의 실적 자료를 교환했던 게 기원이라고 한다. 79년 10월엔 ‘국내 최초 컬러TV 시판이 임박했다’는 증권가 루머를 담은 찌라시가 나와 시장을 흔들기도 했다. 실제 컬러TV는 80년 8월에 처음 출시됐다. 90년대 중반 이후 비자금 정국이 정·재계를 흔들면서 찌라시 수요가 더욱 폭증했다. 95년 ‘4000억 비자금설’과 같은 찌라시로 떠돌던 소문들이 검찰 수사에서 사실로 드러나자 찌라시 가격도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재계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면서 한 부당 50만원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시기 많은 기업은 자체 정보팀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정보팀 소속 직원들은 경찰·검찰·국회·금융·언론계 관계자들과 접촉하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여의도는 정보팀들의 근거지였다. 80년대부터 여의도에서 활동했던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여의도 유흥주점은 다른 곳과 달랐다. 한 건물이 전체가 룸인 곳이 있었고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오후 3시부터는 자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찌라시 제작자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서류 봉투에다 20~30장씩 정보가 될 만한 내용을 써 교환했다”고 전했다. 한때 여의도에서 활동하는 정보팀의 수는 80개에 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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