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DJ와 정보부의 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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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은 정권의 사익(私益)을 위해 정보기관의 '거미손'을 애용했다. 문민시대가 시작되면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이 거미손을 잘라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그는 안기부를 안풍(安風) 비자금 사금고로 활용했다. 알았든 몰랐든 미림팀 도청도 있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정보부의 거미손으로부터 자유로운 첫 번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1973년 정보부에 납치되어 수장(水葬)될 뻔한 피해 사례가 있기도 했다. DJ가 뼈에 사무치는 고통의 기억을 정보부 개혁으로 승화시키기를 국민과 역사는 기대했다. DJ는 나름대로 개혁을 이뤘다. 그러나 그도 정보부의 그림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98년 DJ 취임 직후 과반수의 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DJ 정권은 야당 의원을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10여 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국민회의.자민련으로 옮겨 DJP정권은 결국 과반수가 됐다. 적잖은 탈당자가 비리.약점으로 코너에 몰렸는데 여기에는 정보기관 정보가 활용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DJ의 노벨상 수상을 위해 국정원이 뛰었다는 의혹도 DJ를 누르고 있다. YS 정권의 미림팀 도청을 폭로했던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는 훨씬 전에 국정원이 DJ의 노벨상 수상을 위해 로비활동을 벌였다고 공개한 바 있다. DJ의 측근 참모가 국정원장 직속 부서에서 일하면서 해외의 국가조직과 교포 인사들을 통해 여러 작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영광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노벨상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수여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문제에 국가기관이 관여한 것이 과연 적절했냐는 논란이 많다. DJ 측은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소송을 제기한 바는 없다.

중앙일보는 4월 국정원이 DJ의 숨겨진 딸을 뒷바라지하는 일에 관여했다는 문건을 보도한 바 있다. 이는 불법 대출사건으로 구속된 벤처기업가 진승현씨에 대한 법원의 선처를 바라는 호소문이었다. 2000년 초 국정원의 고위 간부들이 병을 앓고 있던 DJ의 딸을 위해 진씨에게서 거액을 받아 딸의 모친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70년대 중앙정보부는 독재권력의 전위부대였다. 민주화 투쟁의 리더였던 DJ와 그의 부하들은 납치되고 도청 당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 DJ'는 정보기관의 부적절한 그늘을 완전히 걷어내진 못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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