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연구개발비 사상 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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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사상 최대를 기록한 상장사들의 연구개발비가 처음으로 3%대에 진입했다. 그러나 연구개발비외에 상장사들의 '벌어둔 돈 쌓아놓기'는 전보다 더했다. 증권선물거래소가 올 상반기 기업 성적을 분석한 결과, 기업이 번 돈 가운데 투자하지 않고 사내에 남겨둔 돈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인 '유보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 미국 수준에 접근한 연구개발비=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사 가운데 매출액 상위 100개 회사가 올 상반기에 지출한 연구개발비(5조6961억원)는 전체 매출액(169조8640억원)의 3.4%를 차지했다. 연구개발비가 3%대에 진입한 것은 올 상반기가 처음이다. 이는 일본 제조업의 연구개발비 평균인 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의 3.6%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상장사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2002년 1.9%에서 2003년 2.2%, 지난해 2.4% 등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다. 올 상반기의 경우 이들 상장사들의 매출액은 3.1% 증가하는데 그쳤으나 연구개발비는 17.6%나 늘어났다. 업체별로는 삼성전자의 연구개발비가 2조6731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LG전자.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등이 뒤를 이었다.

◆ 돈 벌어 쌓아만 둔다=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 6월말 현재 523개 상장 제조업체의 유보율은 평균 481.5%로 지난해 말의 467.3%에 비해 14.1%포인트 높아졌다. 유보율은 자본총액에서 자본금을 제한 수치인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값으로, 이 비율이 높으면 기업의 재무구조가 탄탄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보율이 높아지려면 순이익이 많이 나야 하는데다 회사에 돈을 많이 쌓아두고 있기에 돈을 빌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순이익이 환율 하락 여파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49%, 78%가 감소하는 등 수출기업의 순이익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상당수의 회사들이 아직 높은 수준의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유보율이 높아진 것이다. 10대 그룹의 경우 지난해 말보다 14.5%포인트 높은 576%를 기록했다. 삼성이 6개월 전보다 24.7%포인트 늘어난 1006.6%로 가장 높았고, SK가 830.7%로 뒤를 이었다.

이처럼 유보율로 측정한 기업의 재무안정성은 높아졌지만 유보율만으로는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장사를 잘했다는 뜻"이라며 "하지만 기업이 미래를 위한 설비투자에 인색한 대신 현금을 쌓아두고만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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