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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회고록 「신의를 지키며」…국내 독점연재(19)|캠프데이비드 산장의 13일(8)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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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4일>
(78년9윌8일 금요일)새벽에 잠이 깨면서부터 나는 오늘 어떻게 해서든지 굳게 얼어붙은 협상을 풀어나갈 방도를 구하거나 적어도 양국대표들이 캠프를 떠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했다. 어젯밤 이집트측과 별도로 마련했던 모임에서 「사다트」의 보좌관들은 이스라엘이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이상 이집트대표들이 회담장소롤 떠나는 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브레진스키」에게 말한 것으로 미루어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하오 2시30분에 먼저「베긴」을 만나고 2시간 후에 「사다트」 와 회합을 갖기로 일정을 짰다. 막상 「베긴」이 내 숙소로 왔을 때 나는 협상에 좀 더 유연성 있게 임해줄 것을 요청하는 일 외에 별로 할말이 없었다.
「베긴」 은 미국이 회담을 시작하면서 미리 이집트측과 의견을 맞추어놓고 그것을 이스라엘에 강요하는 것은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이집트의 요구사항들이 적힌 서류를 주머니에서 끄집어내 내 눈앞에 내밀었다. 나는 그것이 이집트의 최종적인 입장은 결코 아니며「사다트」가 절충할 용의를 갖고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베긴」은 한나라의 대통령인「사다트」가 한번 공개적으로 표명한 일을 어떻게 사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30여분간에 걸쳐 시나이반도의 정착촌들을 그대로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꽤 필수적인지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가자지구에 있는 40만명의 주민들이 생활근거지를 잃을까봐 전전긍긍 하고있으며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정착촌이 끝내 화근>
그는 시나이반도에 있는 정착촌들을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철거시킬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대통령각하 제발 이것만은 미국에서 요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고 했다.
나는 아무 대꾸없이, 그러나 큰 관심을 갖고 그의 말의 변화를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 는 말은 그가 정착촌의 철수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 표현의 차이는 미미했으나 매우 깊은 의미가 있었다. 만약 이스라엘측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 같은 결정의 책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착촌 문제에 관해서는 「베긴」에게 절대로 동의하지 않으며 시나이반도에는 어떤 공격군도 없울 것이라고 「사다트」와 합의한 사실을 강조했다. 공격군대신에 이집트-이스라엘사이에는 1백30km에 달하는 비무장 사막지대가 가로놓여지게 될 것이라는 설명도 했다. 나는 평화협정이 이루어진 후에는 정착촌이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으며 그것들은 평화와 안전의 원천이 아니라 불화와 충돌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긴」은 『대통령각하, 우리한테 내놓을 제안속에 그런 내용을 포함시키지 마십시오』라고 다시 간청했다. 나는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회피할 수는 없읍니다.
바로 이 문제때문에 캠프데이비드협상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요. 「사다트」 대통령이 나에게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안전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부탁할 수 없듯이 이집트 영토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존재에 대해서도 귀하가 나에게 논의하지 말라고 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미국측 제안을 내놓는 것에 반대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는 그런 제안은 좋지않은 발상이며 그것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협정보다 땅에 관심>
「베긴」은 미국의 계획이 캠프데이비드에서 성사된다해도 그후 이스라엘이나 아랍측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어 결국 의견충돌과 불화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제안에 동의하지 않는 측은 그들의 불만을 미국에 전가시켜 자칫 전 아랍세계가 우리들에게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설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베긴」에게 그런 문제에 부딪칠 각오가 돼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이란 사태의 악화뿐이며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안보까지도 위협할 전쟁으로 치닫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베긴」에게 「사다트」가 나에게 줄곧 적극적인 협상중재자가 되어 줄 것을 촉구해온 사실을 상기시키고 만약 미국이 협상에 개입하지 않은채 이집트와 이스라엘에게만 맡겨 둔다면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때로는 상호존경조차 하지 않는 두 나라 사이에서 협상진척의 가능성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어「사타트」가 캠프데이비드에 도착했을 때 나에게 처음 지적한 점은 「베긴」 이 평화협정 보다는 오직 땅만을 원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베긴」은 『그런 주장들은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 이라고 응수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잘 아시겠지만 그것이 바로 이집트의 감정입니다. 그런 분위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감도는한 협정은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적절한 제안을 하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미국의 제안은 귀하나 「사다트」를 놀라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일 그것이 마련되면 귀하에게 먼저 알리고 그 다음에 이집트측에 전달하겠읍니다. 협상진전을 위해선 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읍니다.
「베긴」은 캠프데이비드에서의 협상은 3국이 공동으로 맺는 협정보다도 이스라엘과 미국,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각각 별도의 협정을 이루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가 적어도 미국과 이스라엘간에는 견해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논쟁을 거듭하는 동안 하오 4시가 가까워졌다. 이제는 회담을 끝내야 했다. 사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었다.
「베긴」은 자리를 뜨면서 「바이츠만」이 「사다트」와 만나 시나이에 관한 문제를 검토하도록 해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가 토의할 의제에 정착촌문제가 반드시 포함돼야한다고 강조하고는 「사다트」와의 회담을 위해 그의 숙소로 향했다. 「베긴」은 이어 「로절린」과 내가 함께 그들의 금요일 저녁식사에 와주겠느냐고 청했다. 「사다트」도 초대된다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더니「베긴」은 이번만은 그를 빼놓고 하자고 했다.
내가「사다트」의 숙소에 도착하자 그는 나를 융숭하게 맞아 들인 뒤 내가 항상 즐겨 마시던 박하향기 그윽한 차를 내놓았다.
나는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설명하고는 참을성 있게 노력하자고 말했다. 미국측의 제안을 두 나라가 모두 거부해버린다면 내 입장은 매우 당혹스런 꼴이 되고 말 것이라고 덧붙었다. 「베긴」을 만난 뒤의 느낌으로는 이스라엘측이 나의 제안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 틀림없었다.

<노래도 함께 부르고>
「사다트」는 그 제안이 골란고원과 시나이에 관한 영토권과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머지 문제들은 개의치 않고 적극지지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나는 신의를 지키겠노라고 말하고 팔레스타인과 다른 아랍국가들의 권리를 보장하여 그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나와 「사다트」와의 이야기는 15분만에 끝났다.
이날밤 「로절린」과 나는 「베긴 의 초청으로 이스라엘 대표단 전체와 함께 맛있는 유대 음식을 들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스라엘인들은 분방하고 가벼운 마음이 되어 나를 우울하게 했던 협상때의 태도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협상은 낙관할만한 보장이나 구체적인 근거도 없었지만 나는 매우 고무적인 기분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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