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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과 미모의 업자 공모 축재|「미쓰꼬시· 스캔들」로 일본 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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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대표적 백화점그룹 미쓰꼬시(삼월)를 무대로 사장과 미모의 납품업자가 축재 드라머를 펼친 사실이 경찰조사로 밝혀져 일본판 「이철희· 장영자 사건」으로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동경 지검 특별 수사부는 얼마 전 부하 임원들의 모반으로 사장이 전격 해임 당했던 미쓰꼬시 사장 경질사건에 의혹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 은밀히 수사를 진행하던 중 「오까다」 (강전무·68) 전 사장과 거래해 온 납품업자 「다께히사· 미찌」 (죽구깃??혜?? 52· 본명 소도미화자) 여인이 미쓰꼬시의 간부 2명과 공모, 79년부터 81년 사이 3년간 총액 1억6천4백40만 엔 (약5억 원)의 소득세를 포탈했음을 밝혀냈다.
「다께히사」여인은 오리엔트 교역, 액세서리 다께히사 사 등을 경영하면서 미쓰꼬시가 해외에서 사들이는 수입품의 커미션(중개료) 과 다께히사 사가 납품한 고급 부인복인 카트린의 디자인료 등을 미쓰꼬시로부터 받아내 이를 유령회사와 타인의 명의로 위장, 탈세한 뒤 이를 홍콩 등 해외은행에 비밀 예금한 협의를 받고있다.
「다께히사」 의 미쓰꼬시 납품은 연간 약 1백50억 엔 규모. 프랑스의 쇼메, 영국의 골드스미드 등 해외유명 브랜드중심으로 이중 20%는 오리엔트교역이 수입, 액세서리 다께히사사를 통해 미쓰꼬시에 납품하고 나머지는 미쓰꼬시의 해외 현지 법인이 구입할 수 있도록 「다께히사」 가 알선해 일정한 비율의 커미션을 받는 형식이었다. 「다께히사」 등은 이 과정에서 미쓰꼬시가 직접 구입한 물품에 대해서까지 납품청구서에 커미션을 얹어 빼돌린 다음 이를 탈세했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조사결과다.
수사당국과 일반의 관심은 당연히 「다께히사」와 「오까다」 사장의 관계에 쏠리고 있다.
미쓰꼬시는 금년 들어 매상이 급격히 줄고 재고가 계속 쌓이고 있음에도 납품업자인 다께히사 그룹의 영업이나 납품은 의의로 호조를 보여왔다.
「다께히사」 가 신고하지 않은 소득 2억2천2백만엔 가운데 1억엔 이상은 미쓰꼬시가 지불하지 않았어도 될 커미션으로 밝혀져 수사당국은 「오까다」 사장의 특별 배임여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오까다」 사장은 금년의 영업부진과 최근에 있었던 페르시아 비보전 가짜출품 소동 등으로 지난 9월22일 임시 중역회의에서 이 회사 임원들의 모반으로 전격해임 됐었다 (본지 9월23일자 5면 참조) .
「다께히사」 와 「오까다」 사장이 만난 것은 20년 전인 63년 미쓰꼬시가 개최한 영화 『클레오파트라』 의 스틸 전에서 였다.
당시 「다께히사」 는 딸 하나를 데리고 이혼, 다께히사 미찌 액세서리 스쿨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때 판로개척에 고심하고 있던 「다께히사」 는 「오까다」의 배려로 미쓰꼬시 본점에 액세서리 코너를 마련할 수가 있었다.
「다께히사」 는 33세, 「오까다」 는 당시 49세의 선전부장이었다.
「다께히사」 는 「오까다」를 만날 적마다 『당신은 반드시 사장이 된다』 고 격려했으며, 「오까다」 도 구매담당자들에게 『 「다께히사」 를 잘 보살펴 달라』 고 부탁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후 「다께히사」 의 보장은 본점에서부터 신쥬꾸(신숙), 지대지점으로 확장됐고, 취급상품도 액세서리에서 수입잡화· 고급부인복으로 다양해 졌다.
「오까다」 도 빠른 속도로 승진을 거듭, 72년4월「다께히사」의 말대로 미쓰꼬시의 사장자리에 앉았다.
「다께히사」 도 수입대리점인 오리엔트교역을 발족시켜 해외의 유명브랜드 잡화· 고급기성복 등의 수입상품을 늘려갔다.
「오까다」 가 사장이 된 뒤부터는 미쓰꼬시 내에서는『사장이 두 사람 있다』 는 말이 나돌 정도로「다께히사」가 미쓰꼬시의 내부문제에 간여하기 시작, 상품구입에서부터 사업전개, 그리고 심지어는 간부의 인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발휘해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원은 좌천시키는 등 그 존재는 중역진에서도 거북해할 만큼 됐었다고 한다.「다께히사」 가 납품하는 상품은 이례적으로 전량 매입 돼 오리엔트교역의 납품 액은 최고 연간 3백억 엔까지 치솟아 미스꼬시 수입품 전체의 60%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께히사」의 연간 개인소득은 73년1전3백만 엔에서 80년에는「오까다」 사장의 9천3백만 엔을 앞지른 1억3천만 엔으로 7년만에 10배나 급증했다.
이 때부터 「다께히사」는 미쓰꼬시 임직원들이나 납품업자들간에 「미쓰꼬시의 여제」 로 불려졌다.
「다께히사」 가 해외에 구매 여행을 떠날 때는 반드시 미쓰꼬시의 구매부장이나 과장이 동행했으며, 상품구매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기라도 하면 본사로부터 『하자는 대로 따르라』 는 국제전화가 걸려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되었음에도 「다께히사」 와 「오까다」 사장과의 애경행각 등 내연의 관계는 뚜렷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러 차례 홍콩을 함께 여행했고, 77년6월 「오까다」사장이 파리의 베르사유궁전을 빌어 주최한 파티에 「다께히사」 가 참석하는 등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 것만은 사실이다.
80년 봄 「다께히사」의 딸 결혼식에는 「오까다」 가 아버지 대신 참석했었고 지난5월 미쓰꼬시 직원과 납품업자 등 6백여 명이 에게해 여행을 떠났을 때도 두 사람은 일행에 끼었었다.
일부에서는 미쓰꼬시의 돈이「다께히사」에게서 「오까다」 에게 다시 흘러 들어가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일고 있다.
「다께히사」 검거 직후 「오까다」 는 행방을 감추었다.「다께히사」 의 재산은 1백60억 엔 어치의 미쓰꼬시 재고와 동경의 부동산 12억엔, 이 밖에 홍콩은행에 3억엔 정도가 예금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경=신성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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