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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고라니가 헤집고… 뭉개고… 농사보다 힘든 '밭 지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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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리산 자락에서 농사를 짓는 강대성(70.전북 남원시 운봉읍)씨는 올해 지은 5000여 평의 옥수수 밭 가운데 절반 정도를 망쳤다. 지난달 멧돼지 떼가 밭을 짓밟아 뭉개고 알이 꽉 찬 옥수수를 마구잡이로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강씨는 "동네 주민 대부분이 멧돼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 같은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어 속만 탄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크게 늘고 있다. 농민들은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시설비 지원이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등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 피해 잇따라=환경부에 따르면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는 2002년 121억원에서 2004년 206억원으로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동물별 피해액은 지난해의 경우 멧돼지가 82억4000여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까치 55억여원, 청설모 24억8000여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의 경우 한라산에 사는 2000여 마리의 노루가 콩.고구마.배추.딸기 등을 무차별로 먹어 치우는 바람에 피해면적이 1998년 107ha에서 지난해 583ha로 다섯 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농작물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최근 자연보호 의식이 높아지고 밀렵 등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크게 늘어난 탓으로 분석된다.

◆ 묘책 찾기 고심=농민들은 야생동물을 막기 위해 허수아비를 세우고 철조망 울타리를 치는 것은 기본이고 라디오.확성기를 통한 퇴치법도 시도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개를 풀거나, 호랑이 똥을 뿌리기도 한다. 배 주산지인 전남 나주 농민들은 까치를 쫓기 위해 폭음.경음기를 곳곳에 설치해 놓고 있다.

농민 서모(63.전남 구례군)씨는 "야생동물들이 과일을 먹어 치우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자칫 처벌받을까봐 손을 제대로 못 쓰고 있다"며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행 동식물보호법에 따르면 야생동물을 불법으로 포획하거나 승인 없이 수렵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다.

◆ 대책 없나=미국의 경우 야생동물이 농장 등에 침입하면 토지 주인에 한해 이를 잡을 수 있도록 포획 허가를 내주고 있다. 또 주 정부가 농장주들에게 야생동물 접근을 막는 울타리를 설치하는 비용이나 퇴치용 약품 구입 등을 보조하고 있다. 캐나다 일부 주의 경우 농작물 피해 비용을 보상하고 있다.

환경부는 철조망.경음기 등 시설비 일부를 지원할 방침이다. 또 수확기인 9~10월에 농작물 피해 신고가 들어오면 곧바로 포획에 나설 수 있도록 수렵단도 운영할 예정이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홍정기 과장은 "현재 농작물의 피해 보상을 위한 구체적인 보상 기준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서형식.장대석.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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