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파벌정치 사실상 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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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단칼 승부수에 자민당의 50년 파벌정치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출신 파벌인 모리파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파벌이 해체되며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자민당을 깨부수겠다"는 그의 공약이 취임 4년여 만에 중의원 해산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 몰락한 자민당의 파벌=당내 반(反)고이즈미 세력의 선봉이었던 가메이파는 46명의 세력을 갖춘 당내 4위 파벌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한 후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했던 인사는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자멸하고 말았다.

파벌 회장이던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전 정조회장은 파벌회장직을 내놓고 17일 탈당해 신당에 들어갔다. 가메이 전 회장을 따라 신당으로 간 파벌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케다 전 총리-오히라 전 총리-미야자와 전 총리의 맥을 잇는 당내 3위 파벌인 호리우치파도 와해됐다. 파벌 회장인 호리우치 미쓰오(堀內光雄) 전 총무회장이 우정민영화에 반대해 회장직을 내놓으며 무소속 출마에 나섰기 때문이다.

결속력이 철통 같다던 당내 최대 파벌 하시모토파도 비슷한 신세다. 2003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고이즈미 총리를 밀지, 파벌 내 후보를 옹립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된 후유증 때문이다. 파벌 회장이던 하시모토 전 총리가 지난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입건되고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은퇴가 결정되자 구심력이 사라졌다.

게다가 후임 파벌 회장의 물망에 오르던 와타누키 다미스케(綿貫民輔) 전 중의원 의장마저 17일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인 국민신당 대표에 취임했다. 일본 정치권에선 "이번 선거를 통해 파벌 간 나눠먹기식 구정치는 사실상 사라지고 자민당은 최대 계파가 될 모리파, 그리고 신세대 정치인의 양대 세력으로 구성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번 중의원 해산 과정에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도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발언권이 크게 낮아진 만큼 자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게 되면 고이즈미 1인 정당으로 나아갈 공산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장기 집권으로 가나=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8일 "고이즈미 총리의 측근이 중의원 해산 이틀 만인 10일 '깜짝 놀랄 경제인을 내보낼 것'이라고 말했고, 이것이 17일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 라이브도어 사장 공천 내정으로 현실화됐다"고 보도했다.

고이즈미는 오래전부터 해산 후 정국 구도를 그려왔다는 설명이다.

또 설령 우정민영화 법안이 통과됐다 해도 당내 반란표 등으로 레임덕이 가시화돼 정국이 '포스트 고이즈미' 각축전으로 흘러갔을 것이란 분석 아래 고이즈미의 중의원 해산을 의도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일 언론들은 대체로 "고이즈미 총리 성격상 선거에서 이긴다고 해도 그동안 누차 밝힌 내년 9월 퇴임 의사를 번복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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