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Online 온라인] 너도나도 '○○한 △△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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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가 간 자리에 '금자씨'가 왔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흥행에 성공하자 인터넷상에서 '○○한 △△씨'라는 제목의 글들이 봇물 터지듯 많아진 것.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관련 기사는 '특별한 지성씨, 친절한 퍼거슨씨(알렉스 퍼거슨 감독)'로 제목이 달리고, 민주노동당은 분식회계를 실토한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을 가리켜 '친절한 용성씨?'라는 논평을 냈다. 30대 미혼녀를 지칭할 때 주로 쓰던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 '삼순이'보다 '금자씨'가 훨씬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는 셈. 사회.스포츠 분야에 고루 쓰이고, '친절한'이라는 형용사만 바꿔주면 색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실제로 다소 난해한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두고 '불친절한 금자씨, 불친절한 박찬욱씨'라는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블로그의 주인장들 이름이 '○○한 △△씨'로 탈바꿈한 것이 눈에 띈다. '친절한 공익씨' '친절한 MJ씨' '친절한 민자씨' '친절한 이삭씨'등 수많은 친절남.친절녀들이 등장했다. 시류에 맞춰 이름을 바꾸고 대문을 새 단장해 많은 방문자를 맞아 보겠다는 이런 행위도 일종의 친절 사례이니 '친절한 △△씨'로 이름 달기가 그리 허튼 주장만도 아니다. 메신저의 대화명도 그날그날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복한''찌뿌드드한''뾰로통한' 등 형용사를 붙이고 자신의 이름에 '~씨'를 붙이는 이들이 늘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온 시니컬한 대사들도 온라인 게시판 댓글에 수시로 등장한다. 주인공 이영애가 전도사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던 말, 시뻘건 눈화장을 한 이영애에게 친구가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자 "친절해보일까봐"라고 하던 대꾸, 유괴 살인범 백 선생이 피해 가족에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하던 변명 등이 주요 메뉴.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의 바람은 정치권에서도 불고 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금자씨와 X파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고, 민주노총은 '노동자를 세 번 죽이는 8.15 기념사를 한탄한다'는 성명서에 '친절한 금자씨'의 한 대목을 빗대 놓았다. 금자씨 바람에 편승, 자신들의 주장을 알려보려는 '몸부림'으로 봐야 할까.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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