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법 부결 … 새누리 35명 이탈이 결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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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예산안이 2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가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을 지킨 건 12년 만이다. 여야는 정부가 제출한 376조원보다 6000억원 감액된 375조4000억원(세출 기준)으로 합의해 처리했다. 예산안 수정안은 2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25명, 반대 28명, 기권 20명으로 가결됐다. [김형수 기자]

2일 오후 7시30분쯤 국회 본회의장. 새누리당 이완구·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합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수정안’이 262명 투표에 찬성 114표, 반대 108표, 기권 40표로 부결되자 회의장이 술렁였다. 오랫동안 기업을 이끈 소유주가 사망하고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 상속세 공제한도를 5000억원까지 늘리고, 피상속인 요건을 7년으로 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가업 상속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요건 가운데 ‘사전 경영기간’을 정부안(5년)보다 강화한 7년으로 하는 내용의 합의 수정동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된 것이다. 이날 상정된 예산부수법안 14개 중 이 법안만 통과되지 못했다. 수정동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정부 원안을 표결에 부쳤다. 찬성표(94명)는 더 적게 나왔고, 반대표(123명)는 올라갔다.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이 “원내대표가 합의한 걸 이러면 어쩌나”라고 소리친 걸 시작으로 여당 의원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새누리당 의석에선 “야당은 믿으면 안 돼”라거나 “야당이랑 합의한 거 전부 다 부결시켜”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결정타는 새누리당의 이탈표였다. 수정안의 경우 황우여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7명이 반대표를 던지고, 유승민 의원 등 28명이 기권했다. 새정치연합에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찬성표를 던졌으나 문재인·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대부분이 반대표를 던졌다.

 부결은 반대 토론에서 예견됐다. 토론에 나선 새정치연합 김관영 의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276개의 기업이 새롭게 적용 대상으로 편입되고, 그 기업들은 그냥 앉아서 기업당 최대 약 250억원, 모두 합하면 최대 6조원 상당의 세금을 면제받게 된다”며 “상속세를 정상적으로 내는 기업은 대한민국 전체 51만7091개 법인 중 대기업을 포함해 단 714개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례적으로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전광판에 띄워 놓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김 의원의 토론은 현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일부 여당 의원조차 “김 의원의 토론을 듣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야당의 경우 또 다른 계산도 있었다. 한 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동생(박지만 EG 회장)이 자식들에게 물려 주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우리가 만들었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은 이 법안이 박 회장을 위한 법안이란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날 예산부수법안이 부결되긴 했지만 세입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세금을 깎아 주려던 법안이었으므로 결손이 생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수는 680억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됐다.

글=정종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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