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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휘발유 활개치고 세금 인하 요구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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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각국에서 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경영 실적이 나빠지고, 소비자들은 "지갑이 얇아지고 있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교통요금과 항공료가 들썩이면서 전기.가스료 등 공공요금도 오를 태세다. 일본에선 한꺼번에 기름 탱크를 가득 채우는 운전자가 줄어들었다. 곳곳에서 기름값이 싼 주유소가 인기를 끈다. 심지어 '기름 도둑' '가짜 휘발유'도 활개치고 있다. 고유가 현상이 계속돼 세계 경제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 미국=차량용 휘발유 평균가격은 15일 갤런(3.78ℓ)당 2.55달러까지 올랐다. 15년 만에 최고 가격이다. 1년 전보다 36%나 올랐다. 그러니 서민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구두쇠 작전을 편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승용차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 열고 달리기 ▶값이 비싼 고속도로 주변의 주유소 피하기 ▶기름값을 올리는 주말에 기름 넣지 않기 ▶공기 저항을 피하기 위해 대형 차량 뒤에 붙어 달리기 등의 행태를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홀리 터브스(32)는 "가능하면 차를 운행하지 않으려고 영화.운동 경기 관람과 외식을 피한다"고 말했다.

주유소에선 도둑이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에선 운전자가 직접 기름을 넣고 계산하는 셀프 주유 방식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기름을 넣은 뒤 몰래 달아나는 얌체족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또 주차 차량에서 휘발유를 빼가는 도둑까지 생겨 차주들이 주유구에 자물쇠를 다는 사례까지 나온다.

기업체 역시 비상이다. 특히 항공사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올해 미 항공사들은 60억 달러(약 6조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추산된다. 적자액이 지난해 42억 달러보다 훨씬 많아졌다. 델타.유나이티드.콘티넨털항공 등은 이미 국내선 요금을 올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경영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한다.

석유를 많이 쓰는 다우케미컬은 수십 개의 미국 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산유국인 쿠웨이트나 오만으로 공장을 옮길 계획이다. 전력.에너지 업체들은 직원에게 지급했던 연료비를 삭감하고 상당수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 유럽=프랑스에선 석유에 붙는 각종 세금을 내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야당들은 고유가 시기에 세금을 낮추는 '변동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정부는 유가 추이를 좀 더 지켜보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파리 역시 기름값이 싼 주유소에 대한 차량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 유럽에선 주유소마다 유류 제품 가격을 다르게 받을 수 있다.

영국에선 전기.가스료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될 전망이다. 시민들은 "요금만 올리지 말고 고유가 시대에서 살아남을 근본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하고 있다. 반면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는 고유가를 반기는 분위기다. 알렉산드르 주코프 총리는 "원유 수출로 번 돈을 생산 기반 재투자로 돌리면 경제 구조가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아시아=일본은 일찌감치 산업구조를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표정이다.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 대책을 세우지 않았으나 관공서.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노타이 차림을 권장하고 있다. 에어컨 가동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운수업계는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니혼쓰운(日本通運) 등은 휘발유.경유 차량을 하이브리드(휘발유+전기)차량, 액화석유가스(LPG) 차량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세탁업소.어묵 제조업체도 기름값을 명분으로 요금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에선 정유사들이 가격 규제를 받는 국내 판매를 기피해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주유소들이'기름이 없다'고 문을 닫아 고속도로에 차량이 멈춰서는 모습도 눈에 띈다. 광둥(廣東)에 이어 북부 지역의 대도시에서 문을 닫는 주유소가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 값싼 가짜 휘발유가 나돌고 이를 넣은 차량들이 고장을 일으켜 정비공장을 찾고 있다.

뉴욕.파리.도쿄.베이징=남정호.박경덕.예영준.유광종 특파원,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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