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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원 짜리 이우환 미술관 백지화

중앙일보

입력

대구시가 397억원을 들여 짓기로 한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이우환 미술관)이 백지화됐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2일 대구시의회 의장단과 간담회를 열고 “최근 이우환 화백이 미술관 건립 추진이 어렵다는 서신을 보내왔고 시민단체의 반대도 심해 불가피하게 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범일 전 대구시장과 이우환 화백이 미술관 건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 4년 만이다.

대구시는 달서구 성당동 두류공원 내 2만6000㎡에 국비 119억원, 시비 178억원 등 297억원을 들여 미술관을 짓기로 했다. 또 이 화백이 조각ㆍ회화ㆍ설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가 8, 9명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이들의 작품 구입비로 100억원이 책정됐다. 미술관 이름도 ‘이우환과 그 친구들’로 정했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설계는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에게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권 시장이 취임한 뒤 미술관 건립 재검토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시민단체와 미술계도 반대운동에 나섰다. 시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대구에 연고도 없는 이 화백의 미술관 건립에 거액을 들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정적인 것은 작품 구입비였다. 이 화백은 지난 9월 대구를 찾아 추진 계획을 설명하면서 “참여 작가들의 작품 구입비로 100억원은 부족하다.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대구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 화백은 최근 권 시장에게 서신을 보내 “애초에 대구시가 부탁해 몇 차례 거절하다 떠맡게 됐다”며 “하지만 확신과 실천 의지가 없는 대구시와 더 이상 미술관을 추진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시는 설계비 16억여원을 날리게 됐다. 안도 다다오는 지난해 8월 미술관 설계에 들어가 지난 7월 마칠 예정이었지만 찬반 논란이 일면서 중단했다.

강금수 대구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전임 시장이 실적에 급급해 미술계와 시민단체 등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추진한 게 문제였다”며 “더 많은 예산을 낭비하지 않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동양적으로 재해석한 일본 ‘모노하(物派)’의 창시자다.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를 다니다 일본으로 가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모노하는 나무ㆍ돌ㆍ철판 같은 물체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전시함으로써 그 존재성을 부여하고 물체와 물체, 물체와 공간ㆍ인간 등의 관계를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둔다. 2011년 아시아인으로선 세번째로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70년대 대구에서 열린 현대미술제에 참여했다. 2012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경매에서 그의 1977년 작품 ‘점으로부터’(3점 1세트)가 21억3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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