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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따라 놀러가는것조차 미안하게 생각되는 이웃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계절을 따라 산이나 바다, 혹은 온천장같은 곳을 다녀오는 일이 이제는 사치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이 된듯하다. 농촌의 부녀자들도 관광계를 조직하여 설악산이나 제주도를 어렵잖게 다녀온다고 하고 도시의 영세 상인들까지도 6천∼7천원의 회비로 온천의 하루를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시장 상인들과 합석하여 S온천엘 갔다. 교실만한 방에 50∼60명을 풀어놓았다. 이구석 저구석에 모여 앉아서 싸 가지고온 도시락을 까먹는 것이었는데 그것까지는 서민적인 풍류로 칠만했다. 문제는 목욕을 하고난 뒤였다. 벌겋게 단 얼굴을 해가지고 카세트 라디오의 리듬에 맞추어 흔들어대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버스 전세요금에는 라디오의 임대료까지 포함되어있는 모양으로 도착하자마자 기사가 고섬능의 카세트 라디오를 방에다 딱 설치해 놓는것이었다. 광무하는 아낙의 무리를 바라보다 말고 나도 어느 노파에 끌리어 비위를 맞추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면서 나는 콧등이 찡하는 감상에 젓었었다.
이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부녀자의 무리를 과연 향락객이라고 보아야 옳을까. 그녀들은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영세상인이었다. 그녀들의 반은 가게도 없이 시장의 노상에서 야채나 생선을 파는 상인이었다. 과수로서 3∼4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있는 여자도 여럿 있었다. 그녀들이 한철의 하루를 이런식으로라도 기분을 풀어야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아서 나는끝까지 그녀들과 어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은 뭐니뭐니해도 일행이 좋아야 즐겁다. 여학교동칭이 어울려서 2박3일로 설악산을 다녀온 것은 지난3월이었다. 딸이 희망하는 대학에 들어갔다고 친구가 한턱을 한 것이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고 하면서 좀처럼 시내 외출도 하지 않던 친구까지 나섰으니 18명의 대부대였다. 콘도미니엄 세가구분을 이틀동안 썼으니까 티켓 여섯장을 날린 셈이어서 미안하기는 하였지만 실컷 동심에 젖을수 있었다. 당번제로 취사를 하였고 심야에 몰래 남의 방으로 침입하여 얼굴을 아껴서 밤화장에 특히 신경을 쓰는 친구의 낯에 먹칠을 해가면서 극성을 부렸으니 산골의 밤은 짧기만 하였다.
봄의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돌아오면서 묵호에 들른 일이었다. 어쩌다가 묵호에 자리를 잡은 친구 하나가 냉면장사를 하고 있었다. 월남 30년동안 꼭 한번 만나본 친구였다.
약간의 선물을 사들고 18명의 중량급 여인들이 왁짝 몰려 갔을때 친구는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는 친구의 손은 북두갈고리였다. 냉면맛이 서울의 그것만은 했으랴. 그러나 국수는 영감이 손수 뽑았고 회는 내가 무쳤다고, 상머리에 앉아서 정성을 표하는 친구의 우정을 양념으로 우리는 거뜬히 대접을 비웠다.
묵호 친구가 지금껏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것은 그녀가 준 선물 때문이었다. 묵호를 떠나올때 친구가 우리들 손에 쥐어준 것은 한봉다리의 감자였다. 전날 들를것이라는 전갈을 받고 미리 준비한 모양으로 한관 정도의 감자를 들기 좋게 비닐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것이다.
『진짜 강원도 감자야. 먹어보면 고향생각이 날거야』 -하던 말이 실감될 만큼 탐스럽고 근사한 감자는 아니었다. 알맹이도 작고 오죽잖아서 며칠을 박아두었다가 혹시나 하고 몇알 쪄 보았더니 정말 친구의 말이 옳았다. 솥뚜껑을 연 순간 나는 『야!』하고 탄성을 질렀다. 월남이후 처음 보는 진짜 감자였다. 하얗게 포실 포실 터진 감자를, 식구들이 모여들지 않은 호젓한 초저녁, TV앞에 앉아서 손에 들고 나는 문득 눈시울을 적시었다.
묵허 친구의 말마따나 고향생각이 못견디게 가슴을 뒤집어 놓는 것이었다.
봄의 여행은 이렇듯 친구의 기쁨으로 시작하여 외로운 친구의 우정으로 끝났다. 그런데 어느덧 가을이 되어 며칠후에 또다시 어디론가 다녀오려는 지금 주춤하니 생각을 가다듬게 하는 것이 있다. 봄에 우리는 과연 외롭게 사는 친구에게 기쁨과 위로를 준 것일까 하고.
계절이 되면 산을 찾고 바다를 찾는 일이 사치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을 하기가 미안한, 그런 이웃이 우리 주위에 아직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작은 휴식을 누리기도 송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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