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초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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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구주를 중심한 정치세력이라는 것은 앞서말한 『위지』 왜인전에 보이는 북구주의 여러 읍락국가의 맹주인 사마대국을 기축으로 한 정치집단을 말하는 것이다. 왜인전에 따르면 3세기중엽에 북구주의 맹주국인 사마대가 남쪽의 구노국과 전쟁을 하는 중이었는데, 아마 상당히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듯하여 위에 원조를 요청한 사실이 있었다.
필자는 이 전쟁을 북구주와 남구주의 패권을 다툰 전쟁으로 보며, 이 전쟁에서 사마대국을 중심한 북구주의 연맹국가가 승리해 늦어도 4세기초엽까지는 전구주지방을 통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통일된 구주세력이 동정해 오랜 시일에 걸쳐 대화국가를 세운 것으로 보는 것이다. 대화정권이 그 서울인 나량(나라)를 「야마또」라고 하고, 국호를 역시「야마또」라고 한 것은「사마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사기』나 『일본서기』는 다 신무천황이 구주지방에서 동정의 길을 떠났다고 한것은 설화를 자료로 한 것이기는 하나, 과거의 사실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정군은 바다로 동진해 도중 길비(현재의 강산현과 광도현 동반)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3년여를 머물면서 배를 만들고 군량을 비축했으며 다시 동쪽으로 가서 난파(현재의 대판만) 에 상륙하였다고 했다.
이곳에서 다시 험한 산을 넘어 나량까지 이르는데 많은 적군의 항전이 있어 이들을 정복하는데 거의 3년이 걸렸다는 이야기가 기술돼 있다. 설화상의 년수라고 하는 것은 전혀 믿을 것이 못되지만, 실제로 정복국가를 세우기까지는 몇십년의 긴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또 구주를 떠나 나량까지 이르는 경로의 서술은 지리에 부합한다.
특히 길비에 3년여를 머물러 병선을 만들고 군량을 비축했다는 것은 고대에 정복지를 둔전화하여 병력을 증강한 다른 민족의 예로 보아 동정군의 사실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길비는 뇌호내해에 면하여 구주와 나량의 중간지점이 되며, 또 그 넓은 평야는 속정군의 둔전지로서 적합하다.
위에서 좀 장황하게 서술한 것은 북구주의 사마대국이 구주를 통일하고, 이 구주세력이 주도가 되어 동진, 정복국가를 세웠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북구주 정치세력의 지배계급은 전기한 바와 같이 미생시대에 형성된 것으로서 한반도남부-가야로부터의 이주민들이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는 고고학적 자료를 들어보였다.
그런데 구주의 동정세력에 더 큰힘을 준 것은 가야지방으로부터 새로운 병력과 철을 많이 수용한 일이다. 철은 무기와 농기구의 제작에 가장 중요한 금속이다. 일본의 고분에서는 대량의 철제무기와 농구가 발견된다. 특히 철기의 원재인 철정도 많이 츨토되는데, 그 형태와 크기가 가야고분에서 발견되는 것과 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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