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아침 ] - '개심사 거울 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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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개심사 거울 못' 손정순(1970~ )

단풍으로 겉옷 걸친 백제 코끼리 한 마리 쓸쓸히 웅크린 발치 아래 개심사 경지(鏡池), 여우비 오듯 낙엽들 수수거린다 마음 주렴으로 걸러내면 잎 다 떨군 굴참 몇 그루도 알몸으로, 거울에 제 모습 비추고 섰다 조각 연잎들 하늘 향해 퍼런 손바닥 펼치자 흰 구름 그 위에 내려앉고 푸르게 걸친 정방형의 연못 속으로 우듬지 끝끝까지 아롱대며 감나무 한 그루 하늘의 환한 저 연등들 쳐다본다 나 그 등불 받쳐 들고 절반으로 허리 자른 아주 옛날의 나무다리 건너 상왕산(象王山) 임금 코끼리 등허리에 올라타 하늘 문 두드리고 싶다.


개심사(開心寺). 마음 열려면 개심(改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충남 서산에 위치한 개심사는 강화도 전등사, 화순의 운주사, 해남의 미황사, 부안의 내소사 등과 함께 시인들이 즐겨 찾는 절이다. 절 주변의 풍광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 자연을 닮은 절 모양새가 마음과 몸을 끌기 때문이다. 개심사 경지(鏡池)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곳에 가서 세속 잡사를 털고 죄의 영자(影子)를 들여다보시고 오시라.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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