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하게 다뤄버리는 돈|하루에 67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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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돈은 돈이되 돈 아닌 것이 2가지 있다.
하나는 새로 찍어내서 한국은행의 지하금고속에 쌓여있는 돈이고 또 하나는 금고를 나가 돌고 돌다가 이젠 더러워지고 헐어빠져서 더 이상 쓸 수 없는 돈이라는 판정을 받은, 이른바 손권-.
바로 돈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두 모습이다.
하루 평균 67억원씩의 돈이 손권 판정을 받아 쓰레기처럼 없어진다.
통화량이 늘어남에 따라 폐기 처분되는 손권의 양도 해마다 늘어나 지난한해 한은은 모두 1조4언4백억원의 돈을 폐기했다. 장수로 따지면 8억3천6백만장이나 되는 돈들이다.
올해에는 이보다 더많은 돈들이 손권으로 판정받아 상반기에만 금액으로는 1조8백16억원, 장수로는 5억4천5백만장이나 되는 아까운 돈들이 이 세상에서 퇴장했다.
이 많은 돈들이 폐기되는 과정을 보면 아까운 생각이 더든다.
돈들의 신체검사장이라 할 수 있는 한은 정사과와 감사과에서는 각 시중은행에서 보내온 현 돈들을 엄격히 검사, 손권을 가려낸 다음 통화량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그 장수를 몇번이고 헤아려서 천공실(천공실)이라는 곳으로 보낸다.
이곳에선 지폐의 양쪽에 지름2·1cm정도되는 구멍(천공)을 뚫는 작업이 하루종일 계속된다. 돈으로선 사형수의 낙인이 찍히는 셈이다.
일단 구멍이 뚫린 돈들은 다시 무장경찰관의 호위를 받는 호송차에 실려 부천의 돈 용해공장까지 가게되고 여기서 가성소다와 함께 푹 쪄져서 종이떡처럼되어 일생을 마친다. 요즘에는 하루 2백만∼2백50만장쯤되는 돈들이 구멍이 뚫린 후 녹아 없어지고 있다.
이같은 돈들의 평균수명을 계산해볼때 우리나라 돈들은 외국돈들에 비해 일찍 죽음을 맞는다.
한은 계산으로는 현재 국내에서 통용되고있는 1만원권의 평균수명은 약3년m개월. 5천원권의 평균수명 2년8개월, 1천원권의 평균수명 1년6개월과 비교해보면 그래도 1만원짜리는 대접을 받아 장수하는 편이다. 인플레시대하에서 가장 대접이 소홀한 5백원권의 평균수명은 불과 8개월밖에 안된다.
반면 미 달러화의 수명은 2∼5년, 서독 마르크화의 수명은 1년4개월∼4년으로 우리나라돈보다 장수한다.
험한 취급을 받아 손권으로 없어져버린 만큼의 돈을 새로 찍어내는데는 한해 약 2백억윈의 비용이 든다. 따라서 화폐에 대한 존중심을 높인다는 뜻에서뿐 아니라 물자를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돈들을 좀더 귀중히 다루어야한다고 때마침 돈 깨끗이 쓰기 운동(15일부터 한달간)을 펴고 있는 한은 관계자들은 부탁하고 있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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