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마옐」은 누가 죽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게마옐」의 죽음을 가져온 폭파사건은 누구의 것인가. 「게마옐」은 내부적으로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는 분파마다 수많은 정적을 갖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여러나라에 숙원을 남겨놓았으며 자신이 이끄는 팔랑헤 당내부에서조차 반대세력이 있기 때문에 용의자를 선뜻 지목하기가 매우 어렵다.
레바논 일부에서는 심지어 이스라엘이 평화조약체결을 질질 끌어온 「게마옐」에게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 서둘러 병력진입을 시키기위한 술책을 쓴 것이라고 추측하는 축도 있으나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 현지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또 다른측에서는 소수 공산주의자들이나 시리아에 밀착된 레바논세력의 용모라고 보기도 한다.
「게마옐」이 피살된 후 이와 비슷한 다른 사건에서와는 달리 어느쪽도 『우리가 죽였다』고 내세우지 않은채 침묵을 지키고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팔랑헤당의 본부건물에 2백㎏의 대형폭발물을 장치한 사람은 적어도 보안요원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이며, 건물내부를 소상하게 아는 자라는 것이다.
친시리아 신문인 아시샤르크지는 『회합이 있기전 보안요원들의 철저한 검색이 있었기 때문에 낮선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당사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게마옐」피살사건은 누가 주도했을까.
관측통들은 「게마옐」의 대통령선출에 반대해온 좌익그룹을 첫손에 꼽고 있다. 이들은 75∼76년 내전당시 좌익회교군과 맞붙어 싸운 기독교 군사령관이었던 「게마옐」을 증오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게마옐」의 대통령취임(9월23일)이 다가오자 적대관계를 누그러뜨려 구원을 떨쳐버리는듯 했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철수 후 뒤에 남은 소수병력들의 소행으로 추정해볼 수도 있다.
75∼76년 내전 후「게마옐」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빚어낸 축출·살육·제지 등으로 피맺힌 숙적들도 혐의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레바논의 「와잔」외상이나 「사르키스」현대통령은 『이 나라가 분리되어 약화되기를 바라는 비겁한 음모』라고 언급함으로써 외세개입의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번 사태로 이익을 얻게되는 집단에도 주목해 볼만하다.
이스라엘은 북부국경지역의 안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게마옐」사망후의 즉각적인 진격은 레바논 내에서의 세력확장이 주목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시아파회교지도자인「나비흐·베리」는 「게마옐」의 죽음으로 덕을 보는 것은 이스라엘뿐이라고 지적, 모든 회교세력이 공동으로 경계해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상당수의 관측통들은 레바논을 계속 혼돈상태에 두고 「게마옐」이 이스라엘에 가까와지는 것을 막기위한 시리아계 좌익의 범행으로 보고 있다.
헝클어진 실처럼 복잡하게 얽힌 레바논 사태속에서는 이 모든 견해가 터무니없는 추측일수도 있고, 그중 하나는 진실일수도 있지만 그 미스터리가 언제 풀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