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잡혀 살인누명 벗은 김시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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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또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고문경찰관과 건성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판사를 사회에 고발하렵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구속 기소되어 1심에서 무죄를, 2심에서는 징역15년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의 판결로 1년4개월만인 14일 밤늦게 광주교도소문을 나선 김시조씨(30·대전시대이동194). 그는 아직도 이마와 등에는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특히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걸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김씨가 경찰에 처음 연행된 것은 지난해 7월12일 하오5시쯤. 충북청원군미원면옥화리 벌목장에서였다. 막일을 끝내고 식사를 하던중 들이닥친 경찰관 3명에 의해 포승으로 묶인뒤 경찰기동차로 청주시내 여관으로 연행됐다. 10여일전쯤 전주시효자동에서 발생한 20대 연쇄공 피살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이었다.
김씨는 사건발생시간인 6월24일 밤11시40분 친구집에서 친구와 텔리비전을 보고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거짓말 말라』며 백지를 내주고는 범행경위를 쓰라고 욱박질렀다고 했다.
연행이후 7월21일 전주경찰서에 수감될때까지 청주와 전주시내의 여관·파출소등을 전전하며 김씨가 겪은 고초는 이루 말로 표현할수 없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수갑이 차인채 곤봉과 구둣발에 차였고 고춧가루세례를 받느라 하루에도 몇차례씩 정신을 잃었었다.
『백지를 주고 받아쓰라고 할 때는 혀를 깨물고 죽고싶었지만 언제인가는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는 마음에서 참고 견디었다』 고 했다.
보지도 못한 살인현장에 데려가 시키는대로 현장검증을 할때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꼭둑각시처럼 움직이면서도 검찰에 가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작정했으나 검찰 역시 자신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을대 밤새도록 돌아가신 아버님 얼굴이 꿈속에 보이더니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기 전날에는 꿈자리가 뒤숭숭했다』며 사법부의 오판이 개인에게는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68년청주단성중학교를 졸업, 60세의 노모를 모시고 삭월세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박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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